장기하의 독백부터 김고은의 분노연기까지…공연 '백현진쑈'

'싱크 넥스트 23'의 일환으로 장르 넘나드는 공연 선보여
'갈 데까지 가보는 삶∼'
3일 오후 '백현진쑈'의 첫 번째 게스트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가수 장기하가 본인 인생의 목표를 담담하게 이야기한 뒤 가사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본격적인 노래가 시작되는구나 싶은 순간, 장기하는 다시 담담한 말투로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생각을 읊조린 뒤 같은 소절을 불렀다.

5분 남짓한 무대를 노래 한 곡 없이 독백으로 채우고 사라진 장기하는 관객에게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말라'는 무언의 안내를 건네는 듯 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3'의 일환으로 지난 1∼3일 열린 '백현진쑈:공개방송'은 100분간 시종일관 예측할 수 없는 무대가 이어진 공연이었다. 지난달 인터뷰에서 "이런 무대 공연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을 것"이라던 백현진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백현진은 공연의 연출, 극본, 배우, 무대를 맡아 음악공연, 퍼포먼스, 토막극 등을 20개 파트로 구성한 실험적 공연을 기획했다.

연주, 독백, 연기, 토크쇼, 브레이킹 등 라이브로 공연이 가능하다면 누구든, 무엇이든 무대에 등장했다. 가수 장기하와 Y2K92, 배우 김고은, 김선영, 한예리, 코미디언 문상훈 등 게스트의 라인업부터 색다르다는 인상을 줬다.

장기하의 말을 빌린다면 '갈 데까지 간 공연'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특히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들은 어떤 맥락도 없이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며 관객을 당황하게 했다. 배우 김선영은 토크쇼가 진행 중인 무대에 난입해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분노를 표현하는가 하면, 김고은은 독백 연기 도중 자신을 떠나간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공포를 유발했다.
각양각색의 공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주제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게스트들은 저마다의 장기를 십분 활용해 본인에게 할당된 시간을 채울 뿐이었다.

코미디언 문상훈은 느닷없이 백현진과 부동산 정책에 관한 토론을 시작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하는 문장의 운율을 살린 독백으로 멜로디 없이도 관객에게 듣는 쾌감을 선사했다.

게스트의 개성 있는 무대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백현진쑈'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공연이 되어갔다.

관객들도 코미디 무대에 웃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레 리듬을 타는 등 공연의 형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화가, 가수,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백현진은 이날 노래와 연기, 행위예술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 마리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공연 말미 색소폰·기타·콘트라베이스 등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 '백현진씨'(Bek Hyunjin C)를 이끌고 노래를 부를 때는 관객을 사로잡는 가창력을 뽐냈다.

백현진은 막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는 몸짓과 거친 질감의 목소리로 자신의 곡 '모과' 등을 불렀다.

노래 '빛'에서는 한예리가 출연한 뮤직비디오를 재생한 채 노래를 불렀다.

한예리는 뮤직비디오에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을 선보이며 무대의 깊이를 더했다.

자신이 가진 면모를 아낌없이 선보인 백현진은 땀에 흠뻑 젖은 채 공연을 마쳤다. 출연진 중 유일하게 땀에 젖은 모습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독특한 무대를 가능케 한 백현진만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