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 조성진, 예핌 브론프만...11월 3대 오케스트라와 손발 맞추는 3人3色 피아니스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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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서울 예술의전당, 더벅머리를 한 스무살 피아니스트 랑랑(41)이 첫 내한 독주회를 열었다. 당시 중국이 밀던 피아니스트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윤디 리였다. 윤디 리에 비해 유명세도, 외모도 특출나지 않은 이 연주자에게 국내 관객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좌석의 90%는 비었다. 랑랑은 그렇게 쓸쓸한 '한국 데뷔전'을 치렀다.200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다시 온 랑랑은 3년전의 랑랑이 아니었다. 수더분한 외모의 중국 청년은 온데간데 없고 말끔한 스타일에 세련된 무대 매너를 갖춘 연주자가 무대를 채웠다. 외형만 바뀐 게 아니었다. 테크닉은 한층 더 화려해졌다. 그렇게 랑랑은 팬을 늘려나갔다. 이후 윤디 리의 활동이 주춤해지자 '중국 대표 피아니스트' 자리는 자연스럽게 랑랑에게 돌아갔다. 탁월한 기교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지닌 그는 어디에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호평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통 클래식계에선 랑랑을 예술인이라기보다는 연예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작곡자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 과한 쇼맨십, 넘치는 자의식 등이 이유였다. 그래서 랑랑에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연주자"란 설명이 자주 붙었다.
그 마음은 음악에 그대로 묻어났다. 2020년 발매한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음반이 대표적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는 "이 음반에 테크니션을 넘어 진정한 음악성을 추구하려는 랑랑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며 "(그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비해 음악적으로 매우 성숙하고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그의 내한 리사이틀을 직관한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연구를 많이 한 모습이었다"며 "클라이맥스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깊은 감정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오는 11월 7일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 클래식계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지닌 중견 연주자로서다. 그는 이번 내한에서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줄 계획이다.
브론프만 역시 조성진과 인연이 있다. 조성진은 2020년 음반 '방랑자' 발매 인터뷰에서 그를 이야기 바 있다. 당시 조성진은 "브론프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됐는데, 연주자이자 인간으로서 정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라고 언급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호평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통 클래식계에선 랑랑을 예술인이라기보다는 연예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작곡자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 과한 쇼맨십, 넘치는 자의식 등이 이유였다. 그래서 랑랑에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연주자"란 설명이 자주 붙었다.
엔터테이너에서 음악가로
랑랑이 달라진 건 30대 중후반에 이르면서부터였다. 그를 혹독하게 훈련시켜온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한데다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하면서 안정을 되찾은 덕분이다. 랑랑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게 만든 건 치열함과 절박함보다는 안정과 풍요로움이었다.그 마음은 음악에 그대로 묻어났다. 2020년 발매한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음반이 대표적이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는 "이 음반에 테크니션을 넘어 진정한 음악성을 추구하려는 랑랑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며 "(그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비해 음악적으로 매우 성숙하고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그의 내한 리사이틀을 직관한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연구를 많이 한 모습이었다"며 "클라이맥스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깊은 감정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오는 11월 7일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찾는다. 클래식계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지닌 중견 연주자로서다. 그는 이번 내한에서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줄 계획이다.
랑랑 대타로 베를린필과 인연
같은달 11~12일 서울에는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RCO)도 내한한다. 오케스트라계 빅3가 모두 한국을 찾는 셈이다. 베를린필은 한국의 대표 피아니스트 조성진(12일)과 RCO는 러시아의 인기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11일)과 손을 맞춘다.이들 협연자들은 각별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중심에는 조성진이 있다. 조성진은 2017년 11월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자였던 랑랑의 부상으로 대타로 나선 뒤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까다로운 베를린필의 눈에 들면서 이후에도 여러차례 베를린필과 같은 무대에 섰다. 조성진은 이번 베를린필과의 협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들려준다. 이 곡은 5개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자유롭고, 서정적이며 다채로운 게 특징이다. 이제 서른을 앞둔 조성진의 기량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성진의 젊은 에너지와 묵직한 베를린필이 빚어낼 시너지가 관전 포인트다. 3대 오케스트라 중 가장 색채감이 넘치는 RCO는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택했다. 브론프만은 이번 내한에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들려준다. 그는 거대한 풍채에서 나오는 음량과 테크닉, 서정성으로 이 작품의 화려하고 쾌활한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브론프만 역시 조성진과 인연이 있다. 조성진은 2020년 음반 '방랑자' 발매 인터뷰에서 그를 이야기 바 있다. 당시 조성진은 "브론프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게 됐는데, 연주자이자 인간으로서 정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라고 언급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