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ARM, 기업가치 520억달러로 상장…시장 반응은 "글쎄?"

사진=REUTERS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기업가치 520억달러(약 69조원) 수준으로 상장한다. 지난달 시장에 제시된 640억달러보다 대폭 낮춘 몸값에 주식을 공모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과대평가된 가격"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초석투자자 애플 "ARM과 장기계약 보장"

ARM은 5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예탁주 9550만주의 공모가격 희망 범위를 주당 47∼51달러로 제시했다. 희망가격을 적용할 경우 ARM의 기업가치는 520억달러에 이른다. 2021년 전기차 업체 리비안(137억달러) 이후 뉴욕증시에서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로 기록될 전망이다.이번 상장을 통해 회사가 조달하게 될 자금은 48억7000만달러 가량이다. 당초 80억~100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했으나, 소프트뱅크가 산하 비전펀드에 매각했던 지분 25%를 다시 사들이는 등 ARM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기로 결정하면서 목표 규모를 축소했다. 소프트뱅크는 상장 후에도 ARM의 지분 90.6%를 보유하며 지배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모할 주식 규모는 전체 발행주식의 9.4%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AMD, 애플, 구글, 케이던스, 인텔, 미디어텍, 엔비디아, 시놉시스, TSMC 등 주요 기술 기업 10개사가 초석투자자로 참여한다. 초석투자자는 비상장 기업의 IPO 과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주식을 인수하기로 약속한 전략적 투자자를 의미한다. 이들 10개 기업이 최초 공모가격에 사들일 ARM 주식은 7억3500만달러어치다.

특히 애플은 ARM 상장 증권신고서에서 "2040년 이후에도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프로세서를 개발하도록 보장한다"며 ARM과 장기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명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은 1990년 합작투자의 일환으로 ARM의 설립을 지원한 이후 꾸준히 ARM의 최대 고객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전했다. ARM의 또 다른 핵심 고객사인 퀄컴은 초석투자자 명단에서 빠졌다. 퀄컴이 2021년 반도체 설계사 누비아를 인수한 이후 두 회사가 라이선스 관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AI칩 열풍 수혜는 거리가 먼 얘기"

소프트뱅크는 2016년 320억달러를 들여 ARM을 인수한 뒤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듬해엔 산하 비전펀드에 ARM의 지분 25%를 80억달러로 매각했다. 그러다 ARM 상장을 목전에 둔 지난달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로부터 25% 지분을 다시 사들였다. 비전펀드의 최대 출자자인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 등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비전펀드는 미국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중국 디디추싱의 자회사 디디글로벌 등에 대한 투자 실패로 지난 회계연도에 320억달러라는 역대급 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비전펀드가 보유한 ARM의 지분 규모를 감안할 때 상장 이후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향후 ARM의 주가가 하락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소프트뱅크가 지분 25% 재매입할 때만 해도 ARM 가치는 640억달러로 추산됐다. 이후 불과 몇주 만에 ARM의 몸값을 120억달러 가까이 낮춰 공모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ARM의 매출 상당 부분이 모바일 칩에서 창출되고 있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의 인공지능(AI) 칩 열풍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의 유명 기술 투자자 제임스 앤더슨은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이후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놓쳤다"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AI 칩 등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장할 신규 영역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ARM은 스마트폰에 쓰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분야의 강자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에서 제작하는 모바일AP의 대부분이 ARM의 기본 설계도를 사용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