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사는 양태오, 달항아리에 매료된 샤넬…스타와 스타의 만남

한옥이 길게 늘어선 북촌 자락, 그 길을 올라가다 보면 4층 규모의 소박한 한옥이 눈에 띈다. 옆으로 난 작은 문을 열자, 좁은 1층 공간에 하얀 도자기들이 창밖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을 뿜는다. 소담하게 놓인 찻잔과 그릇들. 그 위에는 우아한 백자 그릇을 굽기 위해 지나갔던 불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다.

바닥엔 크기가 성인 여성 몸통만한 달항아리가 줄지어 놓여있다. 햇빛으로 메이크컵한 달항아리는 한낮에도 달이 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왜 이렇게 생긴 도자기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뒤를 돌자 의자와 협탁 그리고 서랍장이 손짓한다. 여느 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작은 인테리어 소품들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소재와 문양, 그리고 빛깔이 특별하다. 바탕은 흰색이지만 마냥 희지 않고, 모든 문양을 하나하나 손으로 파낸 흔적이 눈길을 끈다. 전통 문양만 보면 나전칠기와 닮은 구석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양 위의 채색이 엷고 투명하게 빛이 비친다는 점이 완벽히 다르다.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이라는 주제의 이번 전시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주간을 맞아 지난달 25일부터 북촌의 한옥에서 열리고 있다. 이걸 기획한 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올공예재단과 손잡고 마련했다. 한국 전통공예의 미를 이어온 예올과 장인정신을 중시해 온 샤넬이 협업해 ‘한국 전통 장인정신’을 세계에 알리고자 기획된 이 전시는 5년간 지속된다.
전시 작가는 우리나라 화각장인 한기덕과 도예가 김동준이 꼽혔다. 샤넬과 예올은 두 작가를 위해 한옥 4층 전부를 내줬다. 선발 과정도 엄격했다.지난해 11월부터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예인들을 방방곡곡 찾아다녔다. 실제 선발된 두 작가도 선발이나 심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공예 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니, 작품 몇 가지를 내 줄 수 있겠느냐"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이번 전시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양태오라는 이름 때문이다. 건축전문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100대 디자이너에 선정된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그가 살고 있는 한옥 디자인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샤넬과 예올의 전시를 위해 총괄 디렉터로 나섰고, 작품도 협업했다.
전시 개막일에 만난 양 디자이너는 세계 미술인들이 모이는 KIAF-프리즈 기간에 한국 전통공예를 알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설레임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는 “아주 작은 공예품에도 인간과 민족이 살아온 여정이 담겨 있다"며 "이런 가치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했다.

한기덕 화각장과 협업한 이유에 대해선 “장인의 전통 작품에 양태오만이 낼 수 있는 동시대적 미학과 기능을 더하면 현대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반 년 넘게 전시를 기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 역시 ‘전통성과 동시대성의 조화’였다고 했다.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시선으로 전통의 기술과 현대적 미학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다. 양 디자이너는 샤넬의 한국 공예 전시 지원, 구찌의 한옥 패션쇼, 보테가 베네타의 한국 작가 지원 등이 최근 줄줄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국가간 교류가 멈춘 그 시간은 각 나라 고유 문화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관심이 단순한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