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빚은 페스츄리 윤종주의 프롬나드(Promenade, 산책, 거닐기)

[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
윤종주 작가의 'Promenade' 전시 리뷰
이름난 빵집의 페스트리, 그 수십 겹의 레이어가 만드는 맛의 비결은 기다림과 지루한 반복작업이다. 몇 겹이 쌓였는지 알 수 없을 때쯤 놀라운 부드러움과 바삭함이 공존하는 궁극의 맛이 탄생하듯 얼마나 많은 색이 쌓였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질 때쯤 신비롭고 은연한 윤종주만의 컬러가 탄생한다.
세상 변화의 속도감은 어느새 적응할 수 있는 정도를 지나쳤다. 중첩된 피로감이 가져다 준 극도의 갈증을 해갈하려면 여하한 양의 수분이 아니고선 엄두도 내지 못할 터, 말복 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맛보았던 달콤한 수박물, 그 달큰하고 시원했던 추억처럼 투명에 가까운 컬러들을 켜켜히 쌓아 만들어 내는 윤종주의 작품이라야 21세기 현대인의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까 한다.
20년이 넘도록 컬러의 레이어가 만들어 내는 오묘한 결과물을 집중 탐구해 온 윤종주의 작품을 통해서 무섭게 달려온 당신의 속도를 줄이고 은은하게 뿜어지는 신비로운 컬러의 향연 속에서 깊은 휴식을 취해 보면 좋겠다.
엷은 컬러의 재료를 평평한 캔버스에 흘려 색상을 안착시키고 마르길 기다려 또다시 같은 동작으로 다른 여러 겹의 컬러를 쌓고 쌓아 만들어낸 컬러로 소통하는 윤종주 작가의 작품들은 타고난 재능이나 금수저로 태어나 부모의 명성에 기대는 낙하산 같은 가치가 아니라 인간이 삶을 통해 쌓아 올린 경험, 그리고 실수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를 대단할 것 없다는 듯 툭 내던지는 달인의 태도처럼 강력한 내공이 있다. 하지만 산뜻하고 신선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 동안 쌓아온 경험의 깊이와 삶을 대해온 태도가 들어나듯 윤종주의 작품은 바라 볼수록 그 색을 음미 할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관람자에게 베풀어준다.
개포동 양재천 변에 위치한 프롬프트 프로젝트의 지하, 그리고 갤러리의 2,3 층은 물론 4, 5층의 레지던시로 이어지는 대규모 개인전에는 컬러를 쌓는 작업뿐 아니라 마음으로 나눈 평면을 컬러와 선으로 분할해 보여주는 작가의 기존 작업들도 다채롭게 선보인다. 2 층의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대형 시리즈 작업으로 그간의 다층 색감 작업의 업력을 은은하게 과시한다면, 3층에선 새로운 색면 분할에 대한 접근으로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엿 볼 수 있고, 4,5 층의 레지던시에 가구들과 함께 전시된 작업들은 윤종주의 작품들이 나의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나 전시장을 떠나지 못하게 발길을 잡아 끄는 신비한 체험은 지하 공간이 맡고 있다. 자연광이 들지 않는 지하 공간에 부유하는 둥그런 색의 덩어리들은 은은하고 신비스러우며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서둘러 전시를 갈무리하고 돌아가려던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오래오래 머물게 하는 작품들은 유독 섬세하고 기민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십 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한결 같은 색의 탐구, 그리고 그 것의 중첩이 만들어 내는 결코 강요하지 않는 힘을 믿어온 윤종주 작가는 비슷한 듯 또 다른 변조로 동일한 주제 의식의 무한 확장을 시작했다. 2023년 9월 도심 이 곳 저 곳에서 윤종주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그 요체는 이 곳에 몰려 있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 아직 수박물 같은 청량함이 더욱 강열하게 우리 미적 갈증에 작용 할 때 전시를 감상해 보시길 은은하게 권해 드린다.

○전시 개요
전시제목: PROMENADE
참여작가: 윤종주
일정: 2023년 9월 1일 (금) - 9월 30일 (토)
장소: 프람프트 프로젝트 (PROMPT PROJECT) (문의: 070-4290-0170)
개관시간: 화-일, 11:00-18:00 (월 휴관)
입장료: 무료
웹사이트: www.promptprojec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