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도가 다른 곳에서 헤어진 연인… 재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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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따분하네. 근데 그게 바로, 둘만의 행복인 걸~.’
'라이트 노벨' 원작…애틋한 판타지 로맨스
불꽃놀이 장면 등 감성적 색채 그림 돋보여
오는 14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를 마무리하는 장면에 흐르는 노래 '피날레(Finale)'의 마지막 가사다. 영화 주인공들의 마음을 대변한 듯한 이 주제가를 작사·작곡한 일본 싱어송라이터 에일(eill)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가사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법하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봤다면 특정 장소와 장면이 떠올라 미소를 지을 듯싶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한 시골 마을의 한적한 기차역 플랫폼.
이 마을에 사는 남학생 토오노 카오루가 도쿄에서 온 전학생 하나시로 안즈를 처음 만나고, 서로 마음을 터놓은 곳이다. 하굣길 방향이 같아 이곳에서 둘이 함께 앉아있을 때마다 열차가 사슴과 충돌해 도착이 30~40분가량 지연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일쑤다. 늦어지는 열차를 기다리는 것은 따분하겠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진 둘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영화의 원작은 작가 하치모쿠 메이가 쓴 동명의 경소설(light novel)이다. 일본 특유의 장르문학인 경소설은 만화·애니메이션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오락소설로 10대 청소년들이 주요 독자다. '여름을 향한 터널, 이별의 출구'는 안팎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터널이란 독특한 판타지 소재를 바탕으로 두 남녀 학생의 가슴 설레는 감정을 그린 러브 코미디다. “뭐든 가질 수 있는 터널 얘기 들어봤어? 터널 안 신사 입구 기둥을 지나가면 원하던 걸 가질 수 있대. 하지만 그 대신 백 살이나 더 먹는대” “그 터널 이름은… ‘우라시마 터널’”
기차역 플랫폼에서 첫 만남을 가진 카오루와 안즈. 다음날 안즈가 카오루 반으로 전학을 오면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같은 반 아이들이 얘기하는 이 마을의 전설을 듣는다. 어느 날 밤, 우연히 카오루는 ‘우라시마 터널’을 발견하고, 안즈에게 그 사실을 들킨다. 안즈는 말한다. “카오루, 나와 손잡지 않을래? 나도 원하는 게 있어. 너도 있겠지? 목적이 같다면 함께 터널을 조사해 보는 게 여러모로 좋잖아.”‘둘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 두 사람은 협력 관계를 맺고 함께 터널을 조사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둘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고,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가족의 일들을 얘기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신사 입구 기둥을 기점으로 터널 안 1초가 바깥세상에선 약 40분, 10초가 약 6시간 반, 108초가 꼬박 사흘이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터널 안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지금의 세상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카오루는 안즈가 터널 안에서 원하는 것을 이미 갖추고 있고,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안즈에게 당부를 겸한 소원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홀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카오루는 이전부터 안즈에게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다'고 여러 차례 메시지를 보냈지만,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었다. 카오루가 터널로 들어간지 8년 후. 만화가로 성공했지만 슬럼프를 겪고 있는 안즈는 둘이 처음 만난 그 기차역 플랫폼에서 카오루가 터널 안에서 문자 메시지로 보낸 그 할 말을 읽는다. 즉시 우라시마 터널로 달려가는 안즈.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카모루와 안즈의 소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족 관계 묘사 등에서 세밀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두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과 풋풋한 러브 스토리에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각본을 직접 쓴 타구치 토모히사 감독이 감성적인 색채와 빛의 흐름을 활용해 스크린에 펼쳐놓는 아름다운 그림은 드라마의 허점을 만회한다.카오루가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안즈와 함께 마을 축제에 놀러가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장면, 두 마리의 고래가 유영하는 수족관에서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 등이 특히 빼어나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만하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