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라면 찬성" 류호정, 한덕수·한동훈과 정쟁없는 토론 [이슈+]

대정부질문서 류호정, 한덕수·한동훈 질의
정쟁·비난 없는 토론 화제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와 나눈 토론이 화제다. 이날 후쿠시마 오염수와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등으로 설전이 오가면서 국회 대정부질문이 첫날부터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으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번 토론만큼은 "보고 싶은 정치의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韓 장관 "의원님 비판도 경청"…柳 "존중합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

이날 류 의원은 질의에 앞서 한 장관에게 밝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이에 한 장관도 목례하며 인사했다. 류 의원은 "지난번과 달리 짧게 준비했다"면서 "지난번처럼 건설적인 문답이 오갔으면 한다"고 운을 뗐다. 한 장관도 이에 "그러면 좋겠습니다"고 답했다.류 의원은 A 회사의 임금 체불 사건을 다뤘다. 그는 "여당이 임금 체불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반대할 야당은 없다. 고용노동부도 감독 강화한다고 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사 법치주의가 잘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장관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이분들(임금 체불된 분들)이 그 고통이 클 것이며 고통에 공감한다. 검찰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의원은 이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등에 대해 단행된 지난달 사면의 적절성을 따져 물었다. 한 장관은 "사면이라는 것은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사면하는 것이 아니다. 사면은 죄가 있고 유죄판결을 법원에서 확정한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면권으로 그 사람의 죄를 없애주거나 복권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의원님께서 비판하실 수 있는 의견도 충분히 경청할만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류 의원은 "저도 장관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르다"고 질의를 이어갔다.

김 전 청장의 내년 총선 출마가 적절하냐는 류 의원의 질문에 한 장관은 "저는 정무직 공무원이긴 합니다만, 선거 출마 여부까지 판단할 입장은 아니다. 그것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柳 "선배님 말씀이기에 기대"…韓 총리 "의원님 말씀하신 정치 문제 다 동의"

이후 류 의원은 한 총리와의 질의에서 "저는 오늘 총리님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님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그리고 윤석열 정부까지 다섯 정부에 걸쳐서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의 보유자"라며 "중용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느냐"고 운을 뗐다. 한 총리가 멋쩍은 듯 "그 부분은 정말 모르겠다"라고 답했고, 류 의원은 웃으며 "자화자찬을 하실 수 있는 타이밍인데도 단호히 철벽을 치시는 겸손함이라고 생각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본격적인 정치 분야 질의에서 류 의원은 "지금 밥 한 번 먹는 것도 너무 대단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이라며 "정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말, 저보다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저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적어도 2023년 지금의 대한민국은 반대"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합리성·과학·지성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면서도 "그건(정치는) 절대로 진전되고 있고 더 나아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 조금 이해하시기는 어려울 텐데, 정말 의원님들 열심히 공부하시고 정말 대단하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SNS와 같은 옛날과는 전혀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 이런 것들이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도록 만드는 그러한 분위기를 계속 만드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류 의원이 "그래도 (정치) 후퇴는 아니다, 진전은 하고 있다는 말씀에서 사실 저는 잘 모릅니다만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이라도 기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양극단 진영 정치는 모든 행정부가 대통령 입만 쳐다보는 '제왕적 대통령제', 상대편이 똥볼 차면 집권하고 까짓것 제1야당 하면 되는 '승자 독식 구조', 공천받으려면 당이 상식과 멀어져도 눈감아야 하는 '공천 제도' 내지 '정당 문화' 때문"이라며 "극렬 지지자 외 무당층이 돼버렸다"고 현재 정치 시스템을 직격했다. 한 총리도 류 의원이 거론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다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자 류 의원은 "공감해 주시고 또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니 저도 좋다"고 화답했다.

류 의원은 협치를 강조하면서 "대통령께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꼭 총리님께서 대통령께 이재명 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방문하시라고 건의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중요하다"며 "양당이 충분히 합의점 충분히 찾을 수 있는 민생 법안이 많이 있다. 만나서 얘기해야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한 총리는 "검토해보겠다"며 "지금 상황이 두 분이 흔쾌히 만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고성 없는 이견에 "이런 정치 찬성"

이날 대정부질문은 여야 11명의 의원들이 나와 국무위원들에게 질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여야 의원들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오염수 방류, 해병대 장병 사망 사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검토, 이재명 민주당 대표 문제 등 정쟁 이슈를 주로 질의하면서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특히 설훈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언급하면서 여야 간 분위기가 격해지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초등학교 반창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진 않다"며 의원들의 자제를 촉구했다.그러나 류 의원이 한 총리, 한 장관과 나눈 토론을 다룬 유튜브 영상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쇄도했다. 특히 류 의원은 31세, 한 총리 74세, 한 장관 50세 등 나이 차이가 다소 있었음에도 토론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민들은 영상 댓글 등을 통해 "이런 정치가 보고 싶었다. 삿대질 없고 고함치지 않고", "(젊은) 류호정 의원도 이렇게 하는데 다른 국회의원들은 안 부끄러우시냐", "국회 분위기가 낯설다.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이었다", "당장은 답이 없더라도 이렇게 토론하는 정치는 찬성한다" 등 반응을 내놨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