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상 떠난 친구에 충격…게임 전문가의 '이유있는 외도'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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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 의미 없더라"
약국 바꾸겠다는 게임 전문가의 도전
연쇄 창업가는 두 부류입니다. 끊임없이 분야를 바꿔가며 ‘페인 포인트(불편 사항)’를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계속 기회를 노리는 창업가도 있습니다. 소 대표는 20년 가까이 후자에 속하는 연쇄 창업가였습니다. 게임업계에서 성공 가도를 달린 그가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차린다고 했을 땐 주변 만류가 심했습니다. 어느덧 덩치를 키운 회사는 인수합병(M&A)을 기반해, 올해 상반기 매출액 약 300억원을 거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오랜 경력과는 다른 분야로 3회차 창업의 문을 연 소 대표의 새 목표를 풀어봅니다.“게임 실적이라는 게, 24시간 쉬지도 못하고 성과를 확인하게 됩니다. 암호화폐 투자의 부작용처럼 사람이 숫자에 중독되더라고요.”소태환 모노랩스 대표(45)의 경력은 언뜻 화려하다. 히트작을 발매한 게임 회사를 두 번이나 일으켰고, 첫 회사는 넥슨에 인수합병(M&A)된 뒤, 넥슨 모바일 게임 부문 총괄까지 역임했다. 많은 창업가가 바라는 위치에 섰지만, 그는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밤을 새우는 것은 당연했지만 게임이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할 때면 특히 힘들었다. 소 대표는 “국가별 게임의 접속자 및 실적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눌러보며 잠도 깊게 못 잤다”고 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40대에는 정반대의 삶을 택했다. 세 번째 창업에 나섰지만, 분야가 달라졌다.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거쳐 영양제 소분 사업을 시작했고, 의약품 유통 회사를 인수한 뒤 약국의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소 대표는 “창업의 성공은 세상이 인정해 주는가의 문제지만, 창업 자체는 간절히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다수 사람이 질병에 빠지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번의 창업, 성공 끝에 망가진 몸
소 대표의 첫 창업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경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은 게임에 있었다.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던 시절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꼬박 1년간 게임을 했다. 질릴 정도로 몰입하자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교내 창업 공모전에서 우승하며 첫 사업을 시작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권준모 네시삼심삼분 이사회 의장(전 넥슨 대표)은 당시 교수 신분이었다. 멘토 역할을 하던 권 의장과 함께 2001년 게임 회사 엔텔리젼트를 설립했다. 과거 게이머들에겐 ‘삼국지 무한대전’을 만든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 대표는 “만든 게임이 1년 내도록 3개 통신사 모바일 게임 순위에서 1등을 기록해 잊을 수 없는 시기”라고 말했다.2005년 회사가 넥슨에 인수됐을 때 소 대표 나이는 27살에 불과했다. 이후 넥슨모바일의 게임 총괄,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으로 일했다. “대기업의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는 소 대표는 “2008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마음의 불씨가 다시 지펴졌다”고 말했다. 락업(주식매각제한) 기간이 끝난 다음 해 권 의장과 함께 게임사 네시삼심삼분을 창업했다. 그는 “처음엔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지 못해 몇 년을 고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활’ ‘영웅’ ‘블레이드’ 등 게임을 성공시켰다. 회사는 모바일 게임 분야 최초로 201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한계가 왔다. 사업이 아니라 소 대표 체력의 한계였다. 게임업계에 들어온 지 약 15년째였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그로부터 멀지 않은 때였다. 소 대표는 문득 40대로서의 자신을 생각했다. 허망함 속에서 병원 검진을 해보자, 자기 몸도 망가져 있었다. 이때 만난 것이 의사가 추천한 영양제였다. 소 대표는 “집에 흔히 널브러져 있던 영양 보조제가 반년 만에 몸을 회복시키는 것을 보고 생각을 달리했다”고 했다. 일하는 분야 자체를 바꿔야겠다 싶었다.
약국도, 영양제도 AI 역할 커진다
새 창업은 2년을 준비했다. 주변에선 뜯어말렸다. 건강 관리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헬스케어는 안된다”는 것이 공통적인 말이었다. 규제 벽도 있었다. 국내선 통에 든 완제품 영양제를 소분해서 파는 것이 불법이다. 품질 관리 목적에서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각종 영양제 구독 서비스를 기획했던 소 대표에겐 걸림돌이었다. 2018년 창업하고는 2년 뒤 산업통상자원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 정부 방침을 반영한 서비스는 영양제 섭취를 원하는 사용자가 AI로 개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 받되, 약사나 영양사 등 전문가 상담을 거치는 형태가 됐다. 약봉지처럼 생긴 영양제를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구독형 구조도 이때 안착했다. 모노랩스는 오는 2024년까지 해당 사업을 허가받았다. 병원과 약국 20여 곳과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최근 집중하는 사업은 약국의 디지털 전환이다. 소 대표는 “맞춤형 영양제 서비스를 시작하고 가장 놀란 것이 약국 깊숙한 곳의 풍경이었다”며 “대형 약국이면 한 달에 쓰는 약이 20억원어치는 되는데, 제조실 안쪽에선 모든 주문을 수기로 관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쿠팡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에 택배가 문 앞에 오는 세상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소 대표는 지난해 의약품 유통회사를 인수했다. 마침 시리즈B 투자 유치에서 125억원을 모은 상태였다. 모노랩스는 해당 회사를 통해 의약품 재고 관리와 주문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SW)를 실험 중이다. AI가 약국이 쓰는 약의 수량을 학습하고 의약품 유통회사로부터 빠르게 약 공급을 받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해외 시장 개척도 주요 목표다. 연내 영양제 구독 서비스를 중국에 정식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은 소분 관련 규제가 없을뿐더러, 상담 과정에서 AI의 역할이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 대표는 “국내 서비스의 의사·약사·영양사 상담 원칙은 규제 샌드박스 허가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규제”라며 “중국은 이런 내용이 없어 접근성이 빠르고, 해외 영양제에 대한 관심도 커 시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모노랩스의 1분기 매출액은 142억원으로, 2분기에는 이보다 증가할 전망이다. 소 대표는 “아직은 의약품 유통회사 매출액이 주요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2025년엔 영양제 사업도 이에 준하도록 성장시킬 예정”이라며 “오래도록 인기 있는 몇몇 게임처럼, 장수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