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예금자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간편결제

선불금 하루 1360억원인데
보호한도는 5000만원 불과

강진규 경제부 기자
“미국을 참고해 간편결제·송금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일 공개한 ‘미국 간편결제·송금 서비스의 특징 및 규제체계’ 보고서에서 이같이 제언했다. 한은은 “미국과 한국의 간편결제·송금 서비스는 양국에서 모두 큰 폭으로 성장했다”며 “국내에서는 2015년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 이후 각종 ‘페이’ ‘머니’ 등이 크게 활성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비스 활성화 초기에는 편의성, 혁신성 등에 대한 관심이 컸으나 최근 들어 소비자 보호 인식이 높아졌다”고 했다.간편결제는 카드나 계좌를 연결해 결제할 때마다 해당 카드와 계좌 잔액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미리 선불로 포인트를 충전하고 나중에 포인트로 결제하는 방식이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 1~6월 전자금융업자를 통한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금액은 하루평균 4157억원이었다. 이 중 선불금 충전 방식 간편결제 비중이 32.7%(1360억원)였다. 상반기 기준으로 2021년(29.2%), 2022년(31.2%)에 이어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간편결제가 편리함을 앞세워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드러나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을 위해 선불금을 충전한 경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용자들은 선불금을 일종의 예금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에 맡겨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는 받지 못한다. 선불금을 받은 사업자가 예금취급기관에 선불금을 맡겨놓으면 국내에선 이용자가 아니라 해당 사업자를 예금자로 본다. 이용자들의 선불금을 모아 수백억원을 예금한 경우에도 5000만원까지만 보호되는 것이다.한국과 간편결제 관련 규제 환경이 비슷한 미국은 이용자에게 예금자 보호를 적용해주고 있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간편결제·송금업체가 은행 등에 예치한 자금에 대해 이용자별로 25만달러의 예금자 보호를 한다. 한국은 전체 선불금 규모가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가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 개별 회사의 선불금 규모를 파악하고, 미국처럼 이용자별로 예금자 보호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소비자들은 선불금과 함께 국내 전자금융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함께 맡겼다는 것을 금융당국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