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8800억원 쓰는데…보호 못 받는 간편결제 선불금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소비자들이 간편결제와 송금을 위해 충전한 선불금이 예금자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 평균 결제 및 송금액이 8800억원을 넘었지만 예금자 보호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다. 은행 위기가 발생할 경우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불금 하루 사용액 8800억원

지난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상반기 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올해 1~6월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금액은 하루 평균 8451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7232억원에서 16.9%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 7991억원에서 500억원 가량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8000억원을 돌파했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이 폐지된 2015년 나온 것이다. 인증서 대신 지문이나 얼굴인식 등 생체 정보 간편 인증수단을 활용해 결제와 송금이 이뤄진다.

삼성전자의 삼성페이가 대표적 간편결제 서비스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페이, 쓱(SSG)페이, 배민페이, 당근페이 등 전자금융업자 37곳과 카드사 9곳, 은행 6곳 등 55개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 애플이 현대카드와 함께 애플페이의 한국 서비스를 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간편결제 서비스 이용방식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카드와 계좌를 연결해 지급 요청시 해당 카드와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선불금을 충전하는 방식도 있다. 미리 카드결제·계좌이체 등을 통해 해당 간편결제 서비스사의 포인트를 사고, 이후 그 포인트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자금융업자를 통한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금액은 하루 평균 4157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3642억원에서 14.1% 증가했다. 올들어 처음으로 일평균 결제액이 4000억원을 넘었다. 이중 선불금 충전 방식 간편결제 비중이 32.7%(1360억원)였다. 상반기 기준으로 2021년(29.2%), 2022년(31.2%)에 이어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카드 연동 방식과 계좌 연동 방식은 각각 61.3%, 6.0%였다.

역시 선불금 충전 이후 사용하는 방식인 간편송금 서비스 이용규모는 일평균 7461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6024억원에서 23.9% 증가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작년 1월 시행된 이후 전자금융업자의 간편송금 서비스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간편송금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는 토스, 네이버페이 등 25곳이다. 선불금이 하루 사용되는 규모만 8800억원을 넘는 것이다.

충전한 내 포인트는 안전할까

하지만 이렇게 충전한 선불금은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한다. 간편결제와 송금 서비스 이용자들은 선불금을 일종의 예금으로 인식하지만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에 맡겨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은이 지난 4일 공개한 ‘미국 간편결제·송금 서비스의 특징 및 규제체계’ 보고서에 따르면 선불금을 받은 사업자가 예금취급기관에 선불금을 맡겨놓은 경우 국내에선 이용자가 아닌 해당 사업자를 예금자로 본다. 이용자들의 선불금을 모아 수백억원을 예금한 경우에도 5000만원까지만 보호가 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선불금 보호 방식. 자료=한국은행
한국과 간편결제 관련 규제 환경이 비슷한 미국은 이용자에게 예금자 보호를 적용해주고 있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간편결제·송금업체가 은행 등에 예치한 이용자 자금에 대해 이용자별로 25만달러의 예금자보호를 한다.한국은 전체 선불금 규모가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결제된 금액은 집계가 가능하지만 선불금을 쌓아놓은 규모는 개별 기업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간편결제와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참고해 간편결제·송금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선불금 충전 방식은 최근 편법 증여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현금의 이동에 비해 이용자 특정과 추적이 어려워서다. 부모가 충전한 포인트를 자녀 등에게 선물해 증여세를 탈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이같은 사례에 관해 점검하고, 지난 2019년 도입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