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들은 왜 ‘현금 없는 사회’를 걱정할까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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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미래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에스와르 S. 프라사드 지음
이영래 옮김/김영사
700쪽|2만9800원
다 같은 돈이 아니다. 은행 계좌에 든 돈과 지갑에 든 돈은 같지 않다. 돈을 만들어 내는 건 중앙은행만이 아니다. 상업은행도 돈을 만들어 낸다. 사실 어느 정도 신뢰만 있다면 누구나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신 ‘믿음’이 사라지면 돈도 사라진다. 뱅크런이 발생하고, 돈처럼 쓰였던 것이 휴지 조각이 되는 이유다. <화폐의 미래>는 이런 돈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 돈의 역사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이 책은 조금 특별하다. 저자의 이름값 때문이다. 코넬대 교수인 에스와르 S. 프라사드가 썼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금융연구국장과 중국 사업부 대표를 지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수의 언론들이 의견을 묻는 국제금융 전문가다.
교과서를 닮았다.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다. 돈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 금융 시스템의 발전, 핀테크 혁신, 암호화폐의 등장, 중앙은행 디지털화페(CBDC), 앞으로의 국제통화 시스템 전망 등을 아우른다. 다소 딱딱한 책이지만, 잘 정리된 보고서를 읽는 것처럼 화폐의 변화 양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원서가 2021년에 출간됐다. 시간이 흐른 탓에 핀테크와 암호화폐를 다룬 부분은 진부한 면이 있다. CBDC를 다룬 부분은 여전히 눈길이 간다. 중앙은행은 현재 두 가지 종류의 돈을 발행하고 있다. 현금과 준비금이다. 준비금은 일반인은 못 쓴다. 은행들끼리만 쓰는 디지털 화폐다.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중앙은행 화폐는 현금뿐이다. 그런데 이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결제, 디지털 결제로 현금 쓸 일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 알리페이와 텐센트 위챗페이의 급부상에 화들짝 놀란 것처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도 앞으로 도래할 ‘현금 없는 사회’에 경각심을 갖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란 일반 사람들이 오로지 민간 상업은행의 돈과 결제 시스템에 기대어 사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이 소매 디지털 화폐인 CBDC 발행을 검토하는 이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캐나다 중앙은행은 “CBDC는 안전한 결제에 대한 보편적 접근, 허용 가능한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 경쟁, 회복력 등 기존 결제 생태계의 바람직한 특징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CBDC를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 현금을 정말 없애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생각해 보자.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 우리는 어떤 돈을 쓰게 될까. 물건을 사고 어떻게 돈을 지불하게 될까. 분명한 건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질 것이란 점이다. 책은 그런 미래를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미래학자보다 상상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경제 이론에 근거하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전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