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각 인생 20년, 일탈에서 새 길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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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프리즈 서울
샤넬이 사랑한 장인 김동준&한기덕
"장식은 필요없다…백자의 백미는 담백함"
화각장 한기덕
"쇠뿔 갈아 만드는 '화각'
한국서만 볼 수 있는 美
세계 알릴 수 있어 기뻐"
도예가 김동준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듯
달항아리가 관심받을 때
도예가로 살 수 있어 행복"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삼청동 한옥에서 샤넬과 예올공예재단이 주최하는 특별전시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을 열고 있는 도예가 김동준(43)과 화각장 한기덕(50)의 말이다. 두 작가는 샤넬과 예올공예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공예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장인을 위해 샤넬과 예올은 4층 규모 한옥을 전부 털어 전시관을 마련해줬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 두 작가의 작품이 해외 컬렉터와 관람객에게 ‘한국의 진정한 미’를 선보이기에 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의 ‘진정한 美’ 선보일 기회
김 작가는 “평생 넉넉하게 작업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돈을 벌 기회는 처음이었다”며 “그때 들어온 주문이 너무 많아서 3년 동안은 주문 들어온 것만 작업해도 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하지만 그는 그 주문을 단 한 건도 받지 않았다. 달항아리에 몰두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당시 나의 달항아리는 항상 2%가 빠진 느낌이었다”며 “육체가 건강할 때 오로지 크고 무거운 항아리만 묵묵히 만들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점검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동준은 자신을 오랜 시간 고뇌하게 한 달항아리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차 도구들을 이번 샤넬·예올 전시에서 모두 선보인다.
한기덕은 대중에게 생소한 화각이라는 작업을 20년 넘게 한 장인이다. 화각공예는 쇠뿔을 얇게 갈아 뒷면에 무늬를 그려 장식하는 공예품이나 그 기술이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 예술가를 화각장이라고 부른다.
한기덕은 화각장이던 아버지의 길을 물려받아 이제 세계에 두 곳만 남은 화각공예 전문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른바 ‘공돌이’이던 한 작가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싶어 2년간 일한 로봇설계회사를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화각에 뛰어들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제 이 세계에서 화각은 사라지겠구나 생각하니 아득했다”는 그는 “그날로 일을 때려치우고 직접 사업계획서까지 작성해가며 아버지를 6개월간 설득해 공방에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1=2’라는 답이 정해진 공식만 알던 공대생이 정답이란 없는 공예를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각이 세상에 둘도 없는 블루오션이라고 느꼈다. 샤넬의 눈을 사로잡은 것도 이 점 때문이다.
세계 유일한 화각 샤넬 사로잡아
그는 이번에 ‘백지상태’에 가까운 백자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그날부터 그는 가마에서 나온 직후 깨 버린 도자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초심으로 돌아가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본에 충실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단순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특징을 고민하기 위해 조선시대 도자기의 시기와 지역별 디자인의 특징 및 차이를 관찰하고 오랜 기간 연습했습니다.”
수백 수천번 빚은 조선백자
한기덕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 총괄을 맡은 양태오 디자이너와 ‘특별한 컬래버’로 탄생한 작품 세 가지를 내놨다. 전시관 1층에 전시된 협탁, 서랍장과 의자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인 양태오의 아이디어와 한기덕 장인의 화각이 더해져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화각 가구’가 탄생했다. 이번 공동 작업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20년간 고집해오던 작업 방식을 완전히 깼다는 데 있다. 한 작가는 “화각 특유의 문양과 색감을 최대한 뺀 것은 인생 처음”이라며 “양 디자이너의 ‘화각공예 전형을 탈피해보자’는 제안에 끌려 진행했는데,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국내 관람객에게조차 생소한 황소뿔 공예인 화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번 기회가 즐겁다고 했다.“유일하게 단 한 국가, 한국에서만 제작되는 화각공예의 멋을 샤넬이라는 브랜드와 선보인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며 “현대적으로 화각을 새롭게 해석한 양 디자이너와의 작업은 전통적인 공예품도 시대에 맞춰 바뀔 수 있다는 진일보한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한 전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