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건축은 나무와 땅, 날아다니는 1000마리의 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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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건축은 기본적으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함께 만들어야 비로소 건축이 그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그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제주 현무암서 떠올린 리조트부터
조개껍데기 모양 닮은 사우나까지
대규모 공사·자기복제 거부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작고 약한' 건축
구마 겐고가 그의 저서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에서 한 말이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 거장이 된 그는 끊임없이 묻는다. 약한 건축, 부드러운 건축, 지는 건축이 가능한가. 그래서 후학들에게 두 가지를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불후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 그리고 ‘경이로운 건축 작품’. 대규모 토목 공사와 스스로 브랜드가 돼버린 스타 건축가들이 결국 자기 복제로 괴물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건축을 그는 엄중하게 비판한다.그의 건축물은 늘 자연과 어우러진다. 사람과 산다. 마치 그 대지에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우주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건축은 죄악이다”라고 말하던 소년은 전 세계에 크고 작은 400여 개의 건축물을 낳았다. 그의 주요 작품 중 10점을 골라 소개한다.
(1) 이탈리아 치도리(CIDORI)(2010)
치도리는 직역하면 1000마리의 새다. 새가 입자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탈리아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한 이 공간은 개방적이고 투명한 ‘집’을 만드는 목적이었다. ‘치도리 코시’는 접착제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내 얇은 직사각형 격자로 엮는 일본의 전통 건축 기술. 견고하게 만든 이런 구조물은 언제든 한 번에 해체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나무는 무한한 자유를 얻는다.(2) 호주 멜버른-보태니컬 파빌리온(2020)
호주 멜버른의 한 식물원 나무에서 벌채된 목재를 사용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다. 이를 폐기하는 대신 나무 주위에 파빌리온을 지어 나무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종류의 목재와 구조물 사이를 지나는 빛을 경험하게 된다. 나무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아치를 만들고, 다공성 나무껍질을 사용해 빛과 공기가 잘 스며들도록 했다. 나무로 지은 숲이랄까. 이 구조는 완전히 재활용할 수 있다. 다른 장소에서 분해와 조립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3)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계단과 복도(2020)스페인의 보물급 건축물인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가우디가 지중해 빛을 천재적으로 활용한 이 집에 구마 겐고는 자신의 찬사를 더한다. 2020년 내부 인테리어를 맡았는데, 알루미늄 체인 스크린을 사용해 (원래 8층 중앙 테라스에서 쏟아지던 자연광을) 지하의 석탄 저장고까지 다채롭게 끌어내렸다.
(4) 스타벅스 오모테산도(2011)
일본 도쿄의 스타벅스 오모테산도는 폭 7.5m, 깊이 약 40m의 길고 얇은 땅 위에 지어졌다. 작은 나무 조각들을 엮어 빛과 바람처럼 흐르는 유기적인 공간을 만들어 전 세계 스타벅스에서도 가장 독특한 장소로 탄생했다. 내부 공간을 덮고 있는 X자형 목재 뼈대는 길이 1.3~4m, 단면 6㎝의 삼나무 약 2000그루를 사용했다. 전체 길이는 4㎞다. 인근 다자이후라는 유적지에 현대 목조 건축 기술이 만나 다른 스타벅스와는 다른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공간을 만든 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과도 친해졌다고.(5) 나오시마 사나마네 사우나-사자에(2022)
나오시마의 작은 만 근처에 있는 글램핑 시설 ‘사나마네’의 중앙에 지은 유기농 목재 사우나 ‘사자에’다. 28㎜ 두께의 합판을 150겹씩 쌓아 만든 목재를 썼다. 평균 벽 두께는 단열과 보온을 잘하기 위해 450㎜ 설계됐다. 외관은 조개껍데기처럼 무수히 접혀 인상적인 그림자를 만든다. 내부에선 몸에 꼭 맞는 주름처럼 어디에 앉아도 편안하다. 빛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명상하게 한다.
(6) 제주 롯데 아트빌라스-제주볼(2012)
구마 겐고는 제주를 방문한 뒤 현무암의 구멍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드럽고, 둥글며, 뚫린 모양을 건축에 옮기고 싶었다고. 집들을 어두운 둥근 돌로 디자인했다.멀리서 보면 돌처럼 보이고, 가까이 가면 지붕이 된다. 검은 자갈 사이의 틈을 통해 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제주의 풍경 안에 또 하나의 제주를 솟아올린 세운 셈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