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나라 살림 허리띠 조인 내년 정부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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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정부가 내년 예산안 지출 규모를 656조9000억 원으로 편성했습니다. 예산안은 정부가 이듬해 1년간 세금 등으로 거둬들일 수입과 여러 정책 집행에 쓸 지출을 정리한 계획표입니다. 나라 살림을 위한 수입·지출 계획표죠.

내년 지출 규모는 올해보다 2.8% 늘었습니다. 지난 정부 5년간 연평균 8.7%씩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윤석열 정부의 긴축 의지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정부는 서민 지원과 경기 진작을 명분으로 내세워 ‘초(超)슈퍼 팽창 예산’을 남발했습니다. 수입을 훨씬 초과하는 지출을 계속하면서 부족한 돈은 국채발행(빚)으로 조달했고, 그 결과 국가채무가 급증했습니다.지난 정부의 이런 잘못은 국민 세금과 국채 발행으로 모은 돈을 방만하게 운영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재정 중독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재정(나라 살림)을 방만하게 운영하면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 특히 미래 세대에게 돌아갑니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이번 정부는 팽창예산 대신 긴축예산을 선택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 매표 예산을 단호히 배격했다”라고 내년 예산안 편성 방침을 설명했습니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가 심의해 확정합니다. 예산안이 어떻게 편성되고 심의되는지 알아봅시다. 예산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정부 관료, 국회의원, 유권자와 이익집단 등의 행동을 설명하는 공공선택론과 선심성 예산(포크 배럴)의 문제를 살펴봅시다.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국회의 반헌법적 예산 심의는 안 돼

1688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납니다. 국왕(군주)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던 전제군주제를 끝내고 국왕과 의회가 병존하는 입헌군주제를 등장시킨 시민혁명입니다. 이때 영국 의회가 세금 징수와 지출에 대한 승인권을 장악했습니다. 그 후 100년이 지나 지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한까지 국왕에서 정부로 넘어가면서 ‘예산’이라는 용어가 사용됐습니다.

예산편성은 정부, 승인은 의회예산은 영국 재무장관이 재정 관련 보고를 하려고 의회에 들고 가던 가죽 서류가방(budget)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영국과 비슷한 시기인 19세기 초 프랑스에서도 ‘예산’이 공문서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영국·프랑스 등 근대국가에서 예산편성은 정책을 수행하는 행정부가 맡고, 의회는 행정부의 예산을 승인하는 식으로 정리됐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 국가로 이어져 독일·일본 등에서도 예산편성 권한을 행정부가 갖습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예산편성 권한이 의회에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54조는 예산의 편성권은 행정부에, 예산의 심의·확정권은 국회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산편성 단계에서 국회가 과도하게 관여할 경우 헌법이 정부에 부여한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산편성예산편성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국가재정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예산안 편성은 정부가 수립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시작됩니다. 정부는 매년 당해 회계연도부터 5회계연도 이상의 기간에 대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해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매년 9월 초)까지 국회에 제출합니다. 이 계획에는 재정 운용과 관련한 기본 방향과 목표, 중장기 재정 전망, 분야별 재원 배분 계획 및 투자 방향, 지출 증가율, 수입 증가율 등이 포함됩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은 매년 1월 31일까지 정부 부처들로부터 중기사업계획을 제출받습니다.

중기사업계획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중장기 계획이라면, 이런 중장기 계획에 근거해 수립되는 단기(1년) 계획인 예산안은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라 마련됩니다. 기재부 장관은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매년 3월 31일까지 정부 부처들에 통보하고, 각 정부 부처는 예산안 편성 지침을 참고해 예산요구서를 매년 5월 31일까지 기재부 장관에게 제출합니다. 기재부 장관은 정부 부처들의 예산요구서를 종합해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후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합니다.

기재부에서 예산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은 예산실장입니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 편성을 맡고 있어 ‘실세 중의 실세’ ‘장관보다 센 1급 관료’라는 수사가 따라붙습니다.

재정권력분립 지켜져야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에서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등 2단계 심사를 거쳐 확정됩니다. 헌법 제54조에 따라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매년 12월 2일)까지 본회의 의결을 마쳐야 합니다.

이처럼 헌법에 따라 예산안 편성권은 정부가, 예산안 심의·확정권은 국회가 갖습니다. 이를 가리켜 ‘재정권력분립’이라고 합니다. 국가 운영과 관련된 권력을 여러 기관에 배분함으로써 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권력분립론을 국가재정에 적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재정권력분립이 잘 지켜졌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국회가 지금처럼 여당이 소수, 야당이 다수인 여소야대일 때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3% 중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2.8%가 늘어난 긴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을 줄이려면 국가재정 상황을 개선시키는 건전재정 기조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과거처럼 국회의원들의 무리한 예산 증액 압박이 재연돼 정부가 헌법에서 부여받은 예산편성권이 침해되고 건전재정 기조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NIE 포인트

1. 헌법이 규정한 예산 관련 권한을 정리해보자.

2. 예산안 편성 과정을 설명해보자.

3. 재정권력분립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

정치인 포크 배럴 막아야
나라 살림이 부실해지지 않아요
< 포크 배럴 : 선심성 예산 쟁탈전 >

게티이미지뱅크
수백조 원이 넘는 정부 예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누가 얼마를 내고, 누가 얼마나 혜택을 받을지 결정하는 것이죠. 한데 사람마다, 집단마다 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예산 결정의 주요 사항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으로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에 근거해 다양한 집단이 협상과 조정을 시도하는 ‘정치’가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예산을 결정하는 과정은 여러 집단이 참여하는 일종의 정치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 집단이 ‘예산 정치활동’ 전개

예산 결정에는 정부 부처와 관료, 대통령, 국회의원, 유권자, 각종 이익집단,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집단이 참여합니다. 이들은 해마다 치열하게 ‘예산 따내기’에 나섭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부 부처들은 서로 힘을 겨루며 로비를 하고, 때로는 부처 간 갈등이 생기며, 예산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다른 부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산을 신청하는 부처는 간혹 이익집단이나 국회의원과 연계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펼치기도 합니다. 특정 예산의 편성을 주장하는 유권자(국민)와 지방자치단체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예산 따내기를 ‘예산 정치활동’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정치과정 설명하는 공공선택론

예산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집단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이 있습니다. 정치과정을 경제학의 원리와 방법으로 분석한 이론입니다.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이 공공선택론의 개척자입니다.

공공선택론에서는 정부 관료·국회의원·유권자·이익집단 등 모든 참여자가 각자 자신의 이익을 높이길 원하며, 효용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가정합니다. 이는 경제학에서의 가정과 동일합니다. 관료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재선을 위해 지역구 유권자나 이익집단을 위한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익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관련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를 벌입니다. 이처럼 예산 결정에 참여하는 관료, 국회의원, 이익집단 등이 각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산 규모를 키운다는 공공선택론의 설명은 우리나라 예산 결정 과정을 분석한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유권자는 자신을 위한 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유권자는 예산의 재원이 되는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한 예산을 늘리면서도 납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빚내기 방식, 즉 공채(국채·지방채) 발행을 선호합니다. 이는 재정적자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권 카르텔 분야 지출 삭감

국회의원들은 예산 결정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예산이 배분되도록 힘을 씁니다.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죠. 이처럼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인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을 ‘포크 배럴(pork barrel)’이라고 합니다. 포크 배럴은 ‘돼지고기 여물통’이란 의미로, 미국 남북전쟁 때 노예들이 그 통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재정 용어로는 ‘선심성 예산 쟁탈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 24조 원을, 내년 예산에서 23조 원을 구조조정했습니다. 지난 정부의 확장 재정에 마침표를 찍고 건전 재정을 단행한 것이죠.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이 많은 분야로 지목한 연구개발(R&D) 예산과 보조금 사업에서 대대적으로 지출을 삭감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공공선택론 관점에서 볼 때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관료와 이익집단의 예산 확보 시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습니다. 예산안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포크 배럴도 차단해야 합니다. 포크 배럴은 야당과 여당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지키기가 더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예산 결정이 정치과정인 이유를 설명해보자.

2. 공공선택론을 정리해보자.3. 포크 배럴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