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잘 만든 영화 두 편이 미국 성장률 끌어올렸다

바벤하이머
미국 기업 사이에서 분홍색 마케팅 열풍을 불러일으킨 영화 <바비>의 한 장면. /한경DB
최근 미국에선 핑크색만 입히면 옷이든 액세서리든 금세 매진되는 ‘분홍 품절(pink shortage)’ 현상이 나타났다. 웬만한 자신감(?) 없인 소화하기 힘든 분홍빛 패션으로 무장한 젊은 여성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버거킹은 핑크색 햄버거를 내놓는 등 기업마다 ‘분홍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바비>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바비>는 한 달여 만에 세계적으로 13억 달러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아직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극장 매출 20억 달러, 패션·캐릭터도 불티

같은 날 선보인 영화 <오펜하이머> 역시 흥행 기세가 매섭다. <오펜하이머>가 현재까지 거둬들인 글로벌 티켓 판매 수입은 8억5000만 달러 이상이다. 연예 주간지 <버라이어티>는 “어두운 분위기의 R등급(17세 이하는 성인을 동반해야 관람 가능) 역사물이 예상을 깨는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전했다.<바비>는 인형이 현실 세계로 넘어와 겪는 에피소드를 그린 유쾌한 영화이고,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물리학자를 소재로 한 무거운 작품이다. 분위기는 정반대이지만, 나란히 대박을 터뜨린 두 작품을 외신들은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라 부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오랜 침체기에 빠져 있던 극장 산업을 일으켜 세운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CNN은 “바벤하이머 조합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냈고 흥행 여파가 인형, 캐릭터 상품 등 연관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바비> 등이 유발한 수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진정, 소비자 신뢰 회복과 함께하는 경제의 전반적인 탄력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투자은행들은 바벤하이머 열풍이 미국의 경제성장에 톡톡히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모건스탠리는 올 3분기 미국 실질 소비지출이 전 분기 대비 1.9%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를 주요 요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흥행과 더불어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등의 대규모 콘서트가 소비 증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갈수록 커지는 ‘콘텐츠의 힘’ 입증

스위프트의 경우 순회공연을 돌 때마다 인근 호텔 예약이 마감되고, 관람객들이 식당과 상점에서도 지갑을 열어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그의 이름과 경제를 합쳐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다. 시장 조사 업체 퀘스천프로는 “올해 스위프트의 투어로 전 세계에서 50억 달러의 경제 부양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잘 만든 엔터 콘텐츠 하나’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영화 상영과 순회공연이 끝나는 4분기에 소비 증가율이 0.6%p 떨어지는 숙취 효과(hangover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