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의 민낯 [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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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대충 봐야 사랑스럽다. 세상도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출장을 갔을 때다. 동행했던 장관이 멀리 보이는 언덕 위의 초가를 보며 말했다. “정말 목가적인 풍경입니다요.”
박정희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살아봤습니까?” 여름이면 벌레가 들끓고 겨울에는 냉풍이 문풍지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드는 삶에 박정희는 진저리를 쳤던 사람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놀러갔을 때다. 가보고서야 왜 그들이 해상 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육상 영토를 개척하다 오스만 제국에게 맞아 붕괴됐는지 알 수 있었다. 다녀온 분들은 다 안다. 관광으로 며칠 있다 오면 모를까 거기가 사람 살 곳인가. 현관문 열면 바로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운하에다 옆집에 놀러가려고 해도 배를 타야 한다. 아마도 당시 베네치아 귀족들은 주말에 정원이 딸린 별장에서 우아하게 지내는 것이 로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고 화를 불렀을 것이다.
현재 베네치아를 찾는 한 해 평균 관광객은 2000여 만명이다. 베네치아 인구가 6만 정도니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300명 중 한 사람만 현지인이다. 다들 거기서 살기 싫은 것이다.
멀리서 봐야 멋지다.
대충 봐야 아름답다. 사람도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 혐오 총격 사건으로 세 명이 사망했을 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이 다시 불려나왔다. 백인을 타도하는 것도 아니고 노예의 한을 푸는 것도 아닌, 주인의 아들과 노예의 아들이 형제애를 품고 식탁에 둘러앉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연설이다. 할아버지의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킹의 귀여운 손녀까지 말을 보탤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길이 남을 연설을 한 다음 해인 1964년 킹과 그의 동료 몇은 호텔 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고 있었다. 미망인인 케네디 여사가 무릎을 꿇고 관의 중간 부분에 키스를 할 때 킹은 태연히 이런 논평을 하신다. “그 부분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 킹을 좋아하셨다면 실망이 크실 수 있겠다.박물관의 이름을 장물 창고라고 불러도 될 만큼 문화재 도굴과 절도에서도 프랑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했던 프랑스 학자 기 소르망은 서구가 아시아의 문화재를 약탈했다기보다 ‘보호’하고 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 논리는 막상막하 절도 국가 영국에서도 단골로 사용된다. Getty Images Bank
서유럽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1순위는 프랑스 아니면 이탈리아다. 특히 프랑스는 왠지 그냥 멋지다. 드골 공항에 도착하면 자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고 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말투에도 평등과 박애가 넘쳐난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인권에도 목소리를 높일 때면 부러운 나머지 “나는 정신적으로 프랑스 국민입니다” 외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한다. 이 중 프랑스의 식민지는 16개국이었는데 프랑스는 독립을 승인하면서 마냥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았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프랑스와 강제로 연대를 맺게 했는데 이른바 식민지 협약이다. 그동안 미안했으니 앞으로 잘 해줄게 차원에서 맺은 협약이 아니다. 식민지 지역의 별도 통화인 ‘세파 프랑’의 의무 사용, 외환보유고의 강제 예치 그리고 천연자원의 독점권과 유사시 프랑스 군대의 주둔 허용이 주요 내용으로, 독립이 되긴 된 건지 알쏭달쏭하다.
외환보유고의 강제 예치란 대체 뭘까. 협약에 따라 세파 프랑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외화의 65%를 프랑스 재무부에 예치해야 한다. 여기에 금융 부채라는 명목으로 20%가 추가되니 다해서 85%다. 자기 돈을 강제로 맡긴 결과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외환보유고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이들 나라에 갑자기 외환이 필요하게 됐다고 치자. 이때는 프랑스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그것도 시장 이자율에 준하는 이자까지 지급하면서. 자기 돈인데, 강제로 맡겼는데 그걸 빌리면서 이자를 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출 상한선까지 있어서 대출을 요청한 나라 수입의 20% 이상은 빌려주지 않는다. 정말 쓰면서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나라라더니 내참.
협약의 압권은 천연자원의 독점권이다. 식민지 모든 천연 자원의 수출은 우선적으로 프랑스에 권리가 있고 프랑스가 안 산다고 해야만 기회가 다른 국가에 돌아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애초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나라에게 천연자원을 팔 기회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다리 공사를 위해 프랑스 기업들과 접촉을 했는데 이들이 부른 액수는 터무니없이 높았다. 코트디부아르는 중국 기업들에게 가격을 문의했고 프랑스 기업의 반값에 공사를 해주겠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러나 중국 기업은 이 공사를 수주하지 못했다. 프랑스가 협약 위반이라며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 코트디부아르를 포함한 식민지 국가들에서 반(反)프랑스 시위가 벌어졌을 때 성조기를 흔들며 차라리 미국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싶다 외친 것은 상징적이다. 이게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자랑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민낯이다.
역사상 별별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 있었지만 이런 나라는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지만 내면은 딴판이다. 프랑스에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이유다.
박정희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살아봤습니까?” 여름이면 벌레가 들끓고 겨울에는 냉풍이 문풍지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드는 삶에 박정희는 진저리를 쳤던 사람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놀러갔을 때다. 가보고서야 왜 그들이 해상 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육상 영토를 개척하다 오스만 제국에게 맞아 붕괴됐는지 알 수 있었다. 다녀온 분들은 다 안다. 관광으로 며칠 있다 오면 모를까 거기가 사람 살 곳인가. 현관문 열면 바로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운하에다 옆집에 놀러가려고 해도 배를 타야 한다. 아마도 당시 베네치아 귀족들은 주말에 정원이 딸린 별장에서 우아하게 지내는 것이 로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고 화를 불렀을 것이다.
현재 베네치아를 찾는 한 해 평균 관광객은 2000여 만명이다. 베네치아 인구가 6만 정도니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300명 중 한 사람만 현지인이다. 다들 거기서 살기 싫은 것이다.
멀리서 봐야 멋지다.
대충 봐야 아름답다. 사람도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 혐오 총격 사건으로 세 명이 사망했을 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이 다시 불려나왔다. 백인을 타도하는 것도 아니고 노예의 한을 푸는 것도 아닌, 주인의 아들과 노예의 아들이 형제애를 품고 식탁에 둘러앉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연설이다. 할아버지의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킹의 귀여운 손녀까지 말을 보탤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길이 남을 연설을 한 다음 해인 1964년 킹과 그의 동료 몇은 호텔 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고 있었다. 미망인인 케네디 여사가 무릎을 꿇고 관의 중간 부분에 키스를 할 때 킹은 태연히 이런 논평을 하신다. “그 부분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 킹을 좋아하셨다면 실망이 크실 수 있겠다.박물관의 이름을 장물 창고라고 불러도 될 만큼 문화재 도굴과 절도에서도 프랑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했던 프랑스 학자 기 소르망은 서구가 아시아의 문화재를 약탈했다기보다 ‘보호’하고 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 논리는 막상막하 절도 국가 영국에서도 단골로 사용된다. Getty Images Bank
서유럽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1순위는 프랑스 아니면 이탈리아다. 특히 프랑스는 왠지 그냥 멋지다. 드골 공항에 도착하면 자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고 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말투에도 평등과 박애가 넘쳐난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인권에도 목소리를 높일 때면 부러운 나머지 “나는 정신적으로 프랑스 국민입니다” 외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한다. 이 중 프랑스의 식민지는 16개국이었는데 프랑스는 독립을 승인하면서 마냥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았다.
식민지 국가들에게 프랑스와 강제로 연대를 맺게 했는데 이른바 식민지 협약이다. 그동안 미안했으니 앞으로 잘 해줄게 차원에서 맺은 협약이 아니다. 식민지 지역의 별도 통화인 ‘세파 프랑’의 의무 사용, 외환보유고의 강제 예치 그리고 천연자원의 독점권과 유사시 프랑스 군대의 주둔 허용이 주요 내용으로, 독립이 되긴 된 건지 알쏭달쏭하다.
외환보유고의 강제 예치란 대체 뭘까. 협약에 따라 세파 프랑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외화의 65%를 프랑스 재무부에 예치해야 한다. 여기에 금융 부채라는 명목으로 20%가 추가되니 다해서 85%다. 자기 돈을 강제로 맡긴 결과 이들 아프리카 국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외환보유고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이들 나라에 갑자기 외환이 필요하게 됐다고 치자. 이때는 프랑스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그것도 시장 이자율에 준하는 이자까지 지급하면서. 자기 돈인데, 강제로 맡겼는데 그걸 빌리면서 이자를 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출 상한선까지 있어서 대출을 요청한 나라 수입의 20% 이상은 빌려주지 않는다. 정말 쓰면서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나라라더니 내참.
협약의 압권은 천연자원의 독점권이다. 식민지 모든 천연 자원의 수출은 우선적으로 프랑스에 권리가 있고 프랑스가 안 산다고 해야만 기회가 다른 국가에 돌아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애초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나라에게 천연자원을 팔 기회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다리 공사를 위해 프랑스 기업들과 접촉을 했는데 이들이 부른 액수는 터무니없이 높았다. 코트디부아르는 중국 기업들에게 가격을 문의했고 프랑스 기업의 반값에 공사를 해주겠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러나 중국 기업은 이 공사를 수주하지 못했다. 프랑스가 협약 위반이라며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 코트디부아르를 포함한 식민지 국가들에서 반(反)프랑스 시위가 벌어졌을 때 성조기를 흔들며 차라리 미국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싶다 외친 것은 상징적이다. 이게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자랑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민낯이다.
역사상 별별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 있었지만 이런 나라는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지만 내면은 딴판이다. 프랑스에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