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꿀템'으로 감쪽같이 속였다…수백만원 꿀꺽한 직원들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1분치 임금 안줘도 임금체불" 강해지는 '시간주권'
한 대기업에선 프로그램으로 회사 속여 수백만원 타가
반면 회사의 근로시간 체크는 점점 어려워져
근로시간 체크했다고...'사찰' 소송 사례도

"생산성 유지 없이는 근로시간 단축 없어...
기업에 근로시간 활용권 부여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하는 시간 늘어난다고 업무성과가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월급 많이 준다고 새벽까지 일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자기 계발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을 더 해서 수당을 더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녁 있는 삶이 더 좋거든요" "돈보다 저녁 시간을 갖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 연구팀이 청년세대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FGI)'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근로=돈'으로 인식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등 근로자들의 권리 의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정부도 이런 흐름을 맞아 근로 시간과 임금체불 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나서고 있다.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반면 회사의 근로 시간이나 근태 관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기업에서는 PC에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해 근로를 계속한 것처럼 속여 연장근로수당을 타간 직원들이 다수 적발되면서 이런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재택 꿀템 써보세요"...수백만원 '꿀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9일 업계에 따르면 한 대기업에서는 근로 시간을 확인할 목적으로 'PC 자동잠금 시스템'을 사용해 왔다. 일정 시간 동안 PC를 사용하지 않으면 PC가 잠기고, 사용자가 잠금 상태를 해제하려면 사유를 입력해야 한다. 사유가 회의 참석 등 근로라면 상관없지만, 개인 용무라면 자동으로 근로 시간에서 잠긴 시간이 차감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올해 초 회사에 제보가 들어왔다. 마우스가 움직이면 PC가 잠기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일부 근로자들이 회사 PC에 ‘지글러’라는 매크로 프로그램 설치해 근로 시간을 인정 받아왔다는 것이다. '지글러'는 1초에 한 번씩 마우스 커서를 자동으로 움직여 컴퓨터를 계속 사용하는 것처럼 인식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회사는 결국 PC에 ‘지글러’를 설치한 대상자들을 적발했고, 개중에는 수백만원의 연장근로수당을 타낸 사례가 적발됐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 직원도 있었고, 견책이나 경고 처분을 받은 직원도 수십명에 이르렀다.지금도 쇼핑몰 등에 '지글러'를 검색하면 ‘재택 근무 필수 아이템’ ‘자리비움 방지 프로그램’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한창 실시되던 2019년경부터 ‘꿀템(꿀 빠는 아이템)’으로 소개되는 등 지글러 사용을 장려하는 글들도 보인다.

○근로시간 체크했다고...'사찰'

이처럼 회사의 근로 시간 체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반면 조금만 점검을 강화하려해도 '직원들의 반발'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차는 근로 시간 중에 거의 매일 수시간씩 집에 머문 영업직 근로자 2명을 해고했다가 소송을 당했다. 동료 직원의 내부 제보로 감사팀이 근로자들의 집 앞에 며칠간 머물며 잠복해 어렵게 적발했지만, 2명 중 한 근로자는 노조와 함께 “불법 사찰”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1, 2심은 회사가 이겼지만,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지난 7월엔 한 기업에서 화재 및 범죄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CCTV를 노조가 검은 비닐봉지로 가렸지만, 대법원이 "CCTV가 작업 공간을 비추는 것 자체가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개인정보 침해라는 판단이다.

이처럼 근로자들의 '시간 주권'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2018년 1주 최대 근로 시간 52시간이 도입된 이후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그간 근로자들이 워낙 장시간 근로에 시달려 왔다는 인식 탓인지, 한국 기업들도 아직은 직원들의 근로 시간 '몰입도' 체크에 크게 신경을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회사의' 근로 시간 단속 움직임이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최근 일본 오사카에서는 근무 시간 자주 흡연한 공무원들이 징계받았다. 감봉 6개월 처분까지 나왔는데, 이 처분을 받은 60대 직원은 14년 6개월 동안 총 355시간 19분(4512회) 자리를 비운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지역 소재 한 노무법인 대표는 "현대차 사건처럼 한국의 근로시간 성실도 체크는 '형평성'을 중요시 여기는 직원들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며 "추후 근로시간 성실도와 관련된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주4일제 원해?..."근로시간 몰입도 높여야"

회사에게도 근로시간 몰입도를 체크할 권한을 주거나, 최소한 제한된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있게 해줘야 노사가 '윈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근로 시간 몰입도'가 높아야 종국적으로 근로 시간을 추가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근로시간 당 생산성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가입국 기준으로는 낮은 편이다.
자료=OECD
물론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이 떨어져서 근로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근로시간이 길기 때문에 업무 중 장시간 휴식 등에 상당히 관대한 문화가 생겼고, 결국 생산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역으로 장시간 근로가 생산성 하락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현행 방식을 유지하면서 주4일제를 도입하려면 '임금 삭감' 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의회정보실 국외정보과 해외자료조사관이 발표한 '영미권 국가들의 주 4일 근무제 현황 및 사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대기업 텔레포니카는 2021년 10월1일 주4일제를 도입하는 대신 임금을 15% 삭감하자 2만여명의 직원 중 불과 150여명(0.75%)이 주4일 근무를 희망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결국 어떤 의견에 따라도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임금 삭감 없이 '지속가능한' 주4일제나, 현행 주 40시간 이하로의 근로시간 단축을 원한다면, 그만큼 효율적으로 몰입도 있게 일할 '각오' 그리고 '제대로 된 근로시간 체크 및 성과 평가 제도'가 준비돼야 한다는 점이다.한 노동경제학자는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며 "재량근로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면서 근로자들의 자율적 선택권 부여하고, 짧아진 근로 시간만큼 생산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