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제론토크라시의 명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통치기구인 게루시아는 30명의 구성원 중 두 명의 왕을 뺀 28명이 모두 60세 이상이다. 플라톤 <국가>의 이상사회 모델도 스파르타였다. 연륜이 깊어져 원숙해진 후 나라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긴 플라톤은 “장로는 통치하고 청년은 복종해야 한다”고도 했다.

노년층에 국가 운영을 맡기는 과두정치 체제를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장로(長老) 정치’다.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시절 옛 소련이 제론토크라시의 전형이었다. 1982년 브레즈네프가 사망했을 때 14명 정치국 위원의 중위 연령(나이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이 71세였다. 덩샤오핑 시절 중국 공산당에서는 “60대의 은퇴 여부를 결정하는 70대 지도자들의 모임을 80대 원로들이 소집한다”는 유머가 있었다.‘혁신의 나라’라는 미국의 요즘 정치권 연령 구조가 딱 제론토크라시의 모습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81), 공화당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도널드 트럼프(77),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81),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72) 등 유력 정치인의 상당수가 70, 80대다. 83세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내년 11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도전장을 던졌다. 당선되면 무려 20선이다.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고 한다. 오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인의 지혜를 칭송한 말이다. 그러나 노쇠로 인한 체력·판단력 저하에 대한 불안한 시선도 적잖다. 최근 한 달 새 두 번씩이나 공식 석상에서 말을 하던 중 갑자기 20~30초간이나 ‘얼음’ 상태에 빠진 매코널 원내대표가 이런 우려를 증폭시켰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글로벌 여론조사 기업 유고브가 얼마 전 미국 국민 13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75세 이상 정치인에 대한 강제 정신 능력 테스트’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에서 찬성한다는 응답이 76%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고령 정치인의 복귀 움직임이 있다. 81세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노인 폄하 발언의 원조 격인 정동영 전 의원(70) 등이 포함돼 있다. 국민들이 ‘올드 보이’의 귀환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