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안 섞이면 어때?… 2023년에 다시 보는 '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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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김태용 감독의 2006년 작품 <가족의 탄생> 포스터에는 한데 모인 6명의 배우들과 함께 이런 카피 문구가 있다. ‘도대체 무슨 사이?’ 또 다른 포스터의 카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쯤 되면 이들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사연이 몹시 궁금해진다. 특별한 사건 없이 이들이 어떻게 만나고 함께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따라가며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형철(엄태웅)이 5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불현듯 누나 미라(문소리)를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무려 20살 연상녀 무신(고두심)과 함께다. 현실주의자인 선경(공효진)은 ‘사랑밖에 난 몰라’인 엄마 매자(김혜옥)이 구질구질하고 싫다. 여자친구 채현(정유미)이 모두에게 사랑을 쏟는 바람에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은 애정결핍에 걸릴 지경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헤픈 거 나쁜 거야?”는 관객들에게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엔딩에서 탄생한 가족은 혼인으로도, 혈연으로도 엮여 있지 않다.
무려 17년 전 작품인데, 그 당시에도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가족에 대해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갔다’거나 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4인 정상 가족’의 신화에 지긋지긋함을 느끼던 관객들은 이 영화 속 가족과 같은 모습을 긍정하며 좀 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들어 이렇게 다채롭게 함께 사는 가족의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1인 가구는 늘어가고 연일 출산율의 심각성과 국가 존폐의 위기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이런 시기에 이 영화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17년이나 흘러 한국 사회의 다채로운 가족 상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문화적 인식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하면, 정말이지 아직은 멀었고, 변화는 몹시나 더딘 것 같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아끼기도 하면서, 어찌 되었든 모여 산다. 지금보다 더 세상을 좁게 보고, 유연하지 못했던 대학생 때의 나는 이 영화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정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부디 이 보석 같은 영화를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