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안지 분실해놓고 불합격…국가자격 시험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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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채점 전 답안지 파쇄' 사건 이후 전면감사고용노동부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국가자격 시험 관리 실태를 감사한 결과, 2020년 이후 7차례 답안지 인수인계 누락 사고가 확인되는 등 총체적인 부실 운영 정황이 드러났다. 고용부는 공단에 기관경고 조치를 내리고 관련자들에 대해 중·경징계 및 경고 조치를 요구했지만, 수차례 반복돼 온 공단의 부실한 시험 관리가 근본적으로 해결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0년 이후 답안지 누락만 7차례
답안지 분실해 놓고 당사자엔 통보 안 한 사례도
보고 올라와도 묵살...'환류' 체계 엉망
연평균 450만명 응시하는 국가자격 관리능력에 '의문'
인력공단 " 국가자격운영혁신TF 구성해 9월까지 개선안 마련"
고용노동부는 12일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자격시험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4월 치러진 정기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서 61개 종목의 수험생 609명의 답안지가 채점도 되기 전에 파쇄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실시됐다. 해당 사고는 어수봉 전 이사장이 물러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감사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강도 높게 진행됐으며, 답안지 파쇄 사건과 별도로 출제-시행-채점-환류 및 조직·운영체계 등 국가자격시험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도 실시됐다.
○2020년 이후 7차례 답안지 누락
답안지 파쇄 사건 감사 결과, 인수인계와 파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단 내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여러 건 확인됐다. 시험장에서 서울서부지사, 채점센터로 인수인계되는 과정에서 답안 수량 확인이나 인수인계서에 제대로 서명이 이뤄지지 않는 등 부실하게 운영된 사실이 적발됐으며, 시험관리위원 위촉에서도 부적정 사항이 발견됐다. 시험지 파쇄 전에 보존기록물 포함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파쇄 과정에서 점검 직원이 상주하게 돼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사실도 밝혀졌다.조사 범위를 넓히니 2020년 이후 최소 7차례나 답안 인수인계 누락 사고가 있었음이 밝혀졌다.심지어 이 과정에서 공단 내부의 감시 기능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채점센터에서 답안지 인계인수 누락이 확인된 경우 소속기관에 연락해 답안 확보 및 채점 완료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이런 절차를 묵살해 버린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지난해 기사 시험 응시자의 자격형 실기시험 답안지 일부(6매 중 1매)를 분실한 사례도 추가로 확인됐다. 공단은 해당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추정 채점을 통해 탈락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관리 전반에서 "총체적 난국"
공단의 이런 관리 부실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2021년 12월 1일 치러진 세무사 2차 시험에서는 세무 공무원이 시험을 면제받는 ‘세법학 1부’ 과목에서 과락률이 82.3%에 달해 논란이 일었다. 평균점수가 당시 합격선인 45.5점보다 훨씬 높은 수험생들이 세법학 1부 과목에서 과락 점수를 받아 불합격한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일반 수험생들은 세무 공무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부정 출제’ 의혹까지 제기했다. 합격자 706명 중 국세행정 경력자가 215명(21.4%)에 달하면서 이런 의혹이 커졌다. 이전 3년간 이 비율은 평균 2.8%에 불과했다.지난 2월 출제된 변리사 1차 시험에서는 산업재산권법 15번 문제를 잘못 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정답 없음'으로 판단한 바 있다. 51명이 추가 합격 처리 됐지만, 시험 일정 연기를 두고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이런 사건이 이어지면서 감사는 파쇄 사건 외에도 국가자격시험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이뤄졌다. 감사 결과 출제와 시행, 채점, 환류 등 거의 전 분야가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먼저 출제 분야에서는 기술사 채점위원 후보자 선정 절차를 미준수하거나, 실기시험 문제 출제장의 보안이 미흡하거나, 시험 위원 위촉 배제 운영 등이 부적정 이뤄진 사례가 적발됐다.시험 시행 분야에서는 수험자 현황 관리 미흡, 인수인계 관련 규정·절차·서식·보안 미흡, 시험 담당 직원 교육 미실시 등이 드러났다. 채점 분야에서는 채점센터로 답안 인수인계 시 보안 취약, 인수인계서 서식 불일치, 채점 센터의 답안지·수험자 현황 관리 미흡, 채점위원에 대한 사후 평가 소홀 등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환류 체계의 운영 부실이 심각했다. 채점 물량의 10%를 선 채점한 후 오류·특이사항이 있는 경우 채점을 보완하는 '채점 리포팅제'의 결과에 대한 환류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보고나 조사체계도 미흡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자격 소관 부처와의 협업·소통 없이 해결해 온 관행도 드러났다.
조직·운영체계에서도 비효율적인 조직 편제, 자체 시험장 부족이 밝혀졌다. 공단 측은 업무량 대비 인력 충원율 저조, 낮은 검정 수수료 등 인력·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고용노동부는 답안지 파쇄 사고에 책임 있는 직원 등 총 22명에 대해 비위 정도에 따라 중·경징계 및 경고·주의 조치 하도록 공단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공단에는 기관경고 조치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시험과 관련해 152건의 소송에 휘말리면서 공단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편 공단이 운영하는 국가기술자격은 총 497개로, 최근 3년간 연평균 약 399만명이 응시해 왔다. 국가전문자격에서도 37개 전문자격시험 시행을 위탁 받아 수행 중이며 평균 약 53만명이 응시하고 있다. 세무사, 노무사, 공인중개사 등 전문자격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정식 장관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고 있는 국가자격시험은 연평균 약 450만명의 국민들이 응시하는 대규모 시험인 만큼 시험에 대한 신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다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해야 하며, 고용노동부도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공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 ‘국가자격운영혁신TF’를 운영해 오는 9월 말까지 더욱 정밀하고 촘촘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