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가 만든 '초공간'…이상한 나라의, 푸른 리본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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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는 정말 꿈을 꾼 걸까?
언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던 앨리스는 기묘한 나라에 다녀왔다. 버섯을 먹고 갑자기 거인처럼 커지기도 하고 무슨 약을 먹었더니 엄청나게 작아지기도 하고 느닷없이 공중에 나타나 웃는 체셔고양이나 늘 시계를 보면서 바쁘다고 뛰어다니는 흰 토끼, (그래, 흰 토끼, 너! 너를 따라 가다가 구덩이에 빠져서 그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되었지!) 그런가하면 ‘저 놈의 목을 치라’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여왕 ... 정말 이상한 곳이었지.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생각해보니 만만한 책이 아니다. 뭔가 엄청난 상상력이 풀어놓아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면 볼수록 쉽지 않다. 뭐지?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을 읽다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루이스 캐럴 교수가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실은 이 루이스 캐럴이 수학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게다가 이 분의 실명은 찰스 도지슨이다.)
루이스 캐럴 아니 찰스 도지슨이 수학자였다는 것은 이 소설의 정체성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위에 언급한 책 <초공간>의 한 부분에 따르면 루이스 캐럴은 리만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리만 기하학을 토대로 평행우주를 생각해보면….
두 개의 평행우주가 짧은 시간에 교차하면서 공간이 찢어지면 두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가 열린다. 이런 개념은 영화 <스타트렉>의 웜홀이나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들여다보면 급격하게 몸이 자라거나 작아지는 것, 체셔 고양이의 이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출몰, ‘태어나지 않은 날’을 축하하는 모자장수의 모습 등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초, 폭발하듯 등장한 각 분야의 천재들의 머릿속은 초공간에 대한 개념과 관심으로 가득했고 이러한 고차원 공간에의 생각과 탐구는 곧 다방면의 예술로 퍼져 나가 ‘공간의 네 번째 차원’이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표출되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작품을 써내려간 마르셀 프루스트, 형이상학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된, 독특하고 뒤틀린 코드진행과 불협화음으로 혁신적인 음악세계를 열어 버린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 입체파를 탄생시킨 피카소나 미술에 새로운 개념을 들여 온 마르셀 뒤샹 등 예술가들은 새로운 차원, 새로운 공간에 열광했던 것이다.리만 기하학이 반영된 이 소설이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니…. 이토록 심오하고 깊은 내용인데 말이다.
2. 푸른 리본의 앨리스
사실 이 작품은 ‘앨리스’가 아니다. 성지연 작가의 연작 ‘홈 스위트 홈 (Home Sweet Home)’의 14번째 사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왠지 나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푸른 리본 때문인지 어떤 직감 같은 것 때문인지의 이유로 사진 속 인물을 ‘앨리스’라 생각하기로 한다. (앨리스가 늘 푸른 리본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푸른 리본을 앨리스의 색으로 느끼는 것일까.)완전한 뒷모습. 측면도 아니고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위로 올려다보지 않는, 정 후면. 그 때문에 작품 속 인물이 향하는 정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 앞에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작품 속에 실제로 거울은 없지만 거울이 있다고 상상하면 그 작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다. 흥미롭고 오싹하고 아름답고 기이한, 이야기들을.거울이라 ...
거울은 단순히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오브제가 아니다. 그랬다면 그 수많은, 전승되어진 이야기나 소설, 영화에 거울이 그렇게까지 등장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거울은 나를 비춰주지만 거울 너머 세계의 나는 또 다른 존재이다.
거울은 면으로 되어 있지만 거울 속의 세계는 또 다른 공간을 가지고 있다.
거울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고 그 문은 당신에게 우호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거울은 신성한 것이기도 하고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울에 비추인 것은 실제의 그것일까 아니면 모방체에 불과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 앨리스는 거울을 통해서 또 한 번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다. 거울을 통해 앨리스가 도착한 곳은 내(앨리스)가 원래 있던 ‘이쪽 세계’가 아니므로 다른 공간이며 다른 우주가 된다. 그 ‘저쪽 세계’에서의 앨리스(나)는, 그렇다면 누구일까? 앨리스인지, 앨리스의 반영체인지 ... (우리의 세상이 체스판이라면 우리가 체스판의 말들이라면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누구일까,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성지연 작가의 작품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다 깜빡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돌아온다. 이것이 성지연 작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법처럼,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훅 끌어들여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비로소 손을 놓아주는…. 성지연 작가의 사진은 회화적이다. 이젤을 받쳐 놓고 모델을 눈앞에 앉히고 구도를 잡고 염료를 고르고 붓을 들어 정신과 마음을 담아낸 그림 같다. 그래서 성작가의 작품은 한 순간의 포착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그림 한 장을 그려낸 화가의 작품과도 같다.(실제로 성지연 작가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모델을 구하고 의상과 장신구를 고르고 색을 고민하고 빛을 고려하며 프레임을 잡는다. 물론 그 모든 준비과정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멋져라!)
*참고도서
<초공간> / 미치오 카쿠, 김영사
*작품 이미지
Home Sweet Home 14, 2016
150x100 cm, Archival Pigment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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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성지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