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자동가입 제도' 정착시킨 영국…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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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프리처드 영국 노동연금부 대변인"기금형 퇴직연금이 계약형보다 시장 경쟁에 더 예민합니다. 직원의 퇴직연금을 설정하는 기업이 수탁 금융기관의 성과를 비교하고 더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제 아닌 '넛지'가 도입 성공 비결
기금형 연금 체제가 시장경쟁 촉진"
영국 노동연금부(DWP) 청사인 런던 캑스톤하우스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프리처드 연금정책 대변인(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금형은 수탁 금융기관의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린 독자적인 투자 판단의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를 기관별로 비교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수탁기관이 수익률 경쟁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연금은 수탁 형태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수탁기관의 운용위가 투자 판단을 내리고 이를 자기 책임 하에 집행하는 기금형이다. 영국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65%(2021년 기준)가 기금형에 납입 중이다. 다른 하나는 수탁기관이 계좌만 터주고 투자자가 직접 또는 디폴트옵션에 따라 펀드를 매수하는 계약형이다. 우리나라의 확정기여(CD)형 퇴직연금은 대부분 이 유형이다.
단 프리처드 대변인은 "둘 중 하나가 더 낫다고는 볼 수 없고 둘 다 필요하다"고 전제를 달았다. 그는 "기금형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투자해야 하지만 계약형을 통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투자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며 "이 사람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은 2015년 '연금 자유화 정책'으로 퇴직연금의 일시금 인출에 부과하던 고율의 세금을 없앴다. 이전에는 일시금으로 인출할 때 세율 55%를 적용해 연금 인출을 사실상 강제했으나, 이 정책으로 두 인출에 부과하는 세금을 같게 만들었다. 단 일시금으로 인출한 돈을 무분별하게 쓰지 않도록 대국민 컨설팅 서비스를 신설했다.프리처드 대변인은 "당사자가 전액 인출을 원하면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해 기본적으로 이 요청에 응한다"며 "다만 인출 실행 전에 정부가 운용하는 컨설팅 서비스 '펜션와이즈(Pension Wise)'와의 상담을 거치도록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 사람이 "사치품을 사고 싶다"고 하면 펜션와이즈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도 괜찮은지 재고해 보도록 유도한다. 그는 "상담은 그 사람이 스스로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유도하는 '넛지(당사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의 차원"이라고 했다.
영국에서는 근로자가 △영국 노동법의 적용을 받고 △나이가 22세 이상~66세 미만이며 △급여가 현행 과세연도에 연간 1만파운드 이상(약 1659만원)인 경우 '퇴직연금 자동등록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이 사람은 회사가 지정한 수탁기관에 퇴직연금을 자동 납입하게 된다. 영국은 이 자동가입 제도를 2012년 도입했다. 제도 도입 전 55%였던 퇴직연금 가입자는 2021년 88%를 기록, 이 제도는 영국 사회에 매우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평가된다.
프리처드 대변인은 "퇴직연금 자동등록 제도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사람들에게 '이걸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넛지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던 덕분"이라며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반대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런던=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