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에 방공호 숨는 14살 우크라 바이올리니스트…끔찍한 상황"

우크라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 17일 국립심포니 지휘…"예술은 세상일에 대한 성찰"
볼로냐시립극장 259년 역사 첫 여성 음악감독…"후배 여성 지휘자 지원"
우크라이나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가 2016년 창단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러시아 침공 이후 음악 교육 대신 위험에 처한 단원들을 대피시키고 지원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됐다.리니우는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쟁이 빚은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현실을 전했다.

그는 오는 1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공연 지휘를 맡아 한국을 찾았다.

이날 공연 첫 곡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밤의 기도'가 연주된다.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이 작곡한 곡으로, 리니우가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했다.

13∼23세 단원들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현재 유럽을 떠돌며 공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쟁 중 살해당한 우크라이나 시인이 쓴 시를 가사로 한 칸타타를 우크라이나 합창단과 공연했다.리니우는 "투어 일정으로 독일에서 2주간 지낼 때, 단원 가운데 14살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여기(독일)에 와서 뭐가 좋으냐고 물으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답했다"며 "이 친구는 키이우에서 왔는데 최근 일주일간 공습이 없던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했다.

방공호에 숨어서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들과 연주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이어 "단원들을 보면 아버지가 전쟁에서 싸우다 돌아가시기도 하고, 집이 폭격당하기도 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며 "나 역시 전쟁이 나고 한 번도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자주 하려고 하는데, 우실 때가 많다.

끔찍하고 슬픈 상황이다.

위험이 도처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세계에서 당장 일어나고 일들에 대한 성찰이다.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라며 "예술은 그 자체가 가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리니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으로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아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서는 안 된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작곡가들의 작품은 한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인류 유산이다.

푸틴의 음악이 아니다"라며 "라흐마니노프가 지금 살아있다면 분명 전쟁에, 푸틴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전쟁으로 벌어진 참담한 우크라이나 상황을 음악으로 세계에 전하는 리니우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의 '유리천장'을 깨부숴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 극장 259년 역사상 최초의 음악 감독,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45년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지금은 여성 지휘자들이 제법 보이지만,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여자가 나 혼자뿐이었다.

교수도 모두 남자였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 무대에서 성공한 여성 지휘자들이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독일에서 한국의 여성 지휘자 김은선(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과 함께 공부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여성 부지휘자를 키우고 있다.여성 지휘자들을 지원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