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 '백오피스' 자처하는 스타트업들…'큰손' 공략은 숙제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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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SW)가 인력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벤처투자 업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VC)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쳐온 자동화 SW 스타트업은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편의성을 내세우며 상반기까지는 성장세를 증명한 모습이지만, 작년 하반기 찾아온 투자 시장의 정체가 당분간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업체들이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셈입니다. VC의 운용지원 업무를 도우며 성장한 스타트업에 새롭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일지 한경 긱스(Geeks)가 알아봤습니다.투자 혹한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VC 일손을 덜어주는 스타트업 서비스가 늘고 있다. 공통적으로 투자사 ‘백오피스(관리 업무 등 운용지원부서)’ 역할을 자처한 곳들이다. 관련 인력이 고질적으로 부족한 업계 특성과 지난해 있었던 펀드 결성 증가 등이 호재로 작용하며 관련 스타트업이 증가했다. 다만 운용자산(AUM)이 크고 후기 라운드에 투자하는 VC들은 관리 업무 외주화가 어렵다는 한계점 등은 업체들이 넘어서야 할 과제로 꼽힌다.
미라파트너스는 2017년 설립됐다. 펀드 관리 업무는 크게 결성, 운용, 해산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결성 총회, 조합 등록, LP(출자자) 보고, 청산 업무까지 백오피스의 업무가 방대하다. 실수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박미라 미라파트너스 대표는 “시장에 풀리는 정책자금 규모가 늘어난 뒤 펀드 관리 실수로 어려움을 겪는 투자사가 많아 기회를 찾았다”며 “지난해 신생 투자사가 늘며 매출액이 2배 증가했다”고 말했다.미라파트너스는 백오피스 업무의 대부분을 자동화하는 SW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내년엔 축적된 펀드 관리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자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표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주주 관리 업무를 대신하던 업체들도 투자사 공략에 한창이다. 증권관리 플랫폼 ‘쿼타북’은 2019년 설립된 스타트업 쿼타랩이 운영한다. 펀드를 통합 관리하고, 투자 정보와 검토 이력을 모아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주주명부의 변동 내역 확인과 전자 날인, 의사록 작성 등 반복 업무도 처리할 수 있다. 최근 관리 중인 투자사 고객 수가 500개를 돌파했다.최동현 쿼타랩 대표는 “자본시장이 성숙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등 다양한 ‘투자 플레이어’가 시장에 참가하기 시작해 솔루션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한다”며 “다른 업권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가 비용 임계점을 거쳐 인력을 대체한 것처럼 투자업계도 곧 변화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관련 업무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하는 업체는 지향점이 대체로 비슷하다. 2020년까지 국내에선 ‘한국판 카르타’를 꿈꿨던 10여 개의 전자 주주명부관리 서비스가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요 고객은 스타트업이었다. 2012년 미국에서 설립된 카르타는 2019년 3억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기업 반열에 올랐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곳들은 더 큰 성장을 위해 투자사의 수요에도 주목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유동성 확대로 인한 투자사 증가 추세는 이들에게 유리한 시장 조건이었다. 이미 카르타가 성공을 증명한 사업모델이기도 했다. 카르타는 펀드 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내 VC들 역시 일손 대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선 380개의 신규 투자조합이 10조7286억원 규모로 결성됐다. 직전 연도 대비 신규 조합 수는 24개 감소했으나, 금액은 1조2308억원 늘었다. 백오피스 인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백오피스는 운용 지원과 회계처리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펀드 투자 성향과 속사정을 꿰고 있어야 해서 경력자 찾기가 어려웠다”며 “대표들이 큰 하우스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백오피스 인력을 빼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백오피스 규모가 작은 투자사와 신생 운용사를 중심으로 자동화 SW를 찾는 곳이 늘기 시작했다.
성장세 지속을 위한 숙제는 ‘큰손’ VC를 대상으로 한 고객군 확대가 언급된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라파트너스, 쿼타랩 등의 서비스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나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작은 규모의 VC들 선호도가 높다”며 “백오피스가 크고 프리 IPO까지 투자하는 대형 투자사는 서비스 사용을 일종의 외주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보안 이슈와 심리적 거부감이 존재하는 상태”라고 귀띔했다. 자동화 SW가 인력 전체를 대체하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사람을 추가로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먼저라는 것이다. 보안상 안전하다는 신뢰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중소형 투자사의 관성도 넘어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5인 규모 VC에 근무하는 한 투자심사역은 “심사역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익숙하지만, 백오피스는 채용할 때부터 장기 근속할 인물을 찾는다”며 “소형 VC의 의사 결정권자는 대부분 대형 하우스 출신으로, 외주화에 돈을 쓰는 대신 1명이라도 제대로 된 백오피스 인력을 키워나가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10인 규모 VC의 또 다른 투자심사역은 “모태펀드 출자 분야 중 규모가 큰 곳일수록 프레젠테이션(PT) 과정에서 펀드 관리 역량을 내세워야 하고, 때론 실사 과정에서 관리팀이 불려 나가는 경우도 있다”며 “몸집 확대를 꿈꾸는 투자사 입장에선 비용을 분산하지 말고 경력직 백오피스 인력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증가한 '플레이어', 성장한 펀드 관리 수요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미라파트너스의 누적 관리 펀드 조합 수는 올해 상반기까지 1109개를 기록했다. 2021년 말 582개와 비교하면 약 2배 증가했다. GP(펀드 운용사) 기준으로는 약 350개가 등록돼 있다. 관리 중인 AUM은 5조1699억원 상당이다. IBK투자증권, 대신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증권사와 브리즈인베트스먼트, 티인베스트먼트 등 VC,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고려대·동국대 기술지주 등 스타트업 유관 조직이 포함됐다.미라파트너스는 2017년 설립됐다. 펀드 관리 업무는 크게 결성, 운용, 해산으로 나뉜다. 이 과정에서 결성 총회, 조합 등록, LP(출자자) 보고, 청산 업무까지 백오피스의 업무가 방대하다. 실수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박미라 미라파트너스 대표는 “시장에 풀리는 정책자금 규모가 늘어난 뒤 펀드 관리 실수로 어려움을 겪는 투자사가 많아 기회를 찾았다”며 “지난해 신생 투자사가 늘며 매출액이 2배 증가했다”고 말했다.미라파트너스는 백오피스 업무의 대부분을 자동화하는 SW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내년엔 축적된 펀드 관리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자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표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주주 관리 업무를 대신하던 업체들도 투자사 공략에 한창이다. 증권관리 플랫폼 ‘쿼타북’은 2019년 설립된 스타트업 쿼타랩이 운영한다. 펀드를 통합 관리하고, 투자 정보와 검토 이력을 모아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주주명부의 변동 내역 확인과 전자 날인, 의사록 작성 등 반복 업무도 처리할 수 있다. 최근 관리 중인 투자사 고객 수가 500개를 돌파했다.최동현 쿼타랩 대표는 “자본시장이 성숙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등 다양한 ‘투자 플레이어’가 시장에 참가하기 시작해 솔루션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한다”며 “다른 업권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가 비용 임계점을 거쳐 인력을 대체한 것처럼 투자업계도 곧 변화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귀해진 백오피스 인력, SW가 일부 대체
틈새시장을 노린 곳도 나타났다. 주주 관리 서비스 ‘주주(ZUZU)’는 개인투자조합을 겨냥했다. 주주 운영사이자 2021년 두나무 자회사가 된 코드박스는 원래 스타트업 스톡옵션 관리와 주주 명부 처리 등의 사업을 하며 몸집을 키워왔다. 투자사 대상 사업으론 VC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를 대행하는데, 최근엔 개인투자조합에서 발생하는 백오피스 업무를 중점 분야로 삼았다.서광열 코드박스 대표는 “결성계획 신청, 계좌 개설, 조합원 총회 절차 등의 백오피스 업무는 개인 투자자가 직접 배워서 처리하기에 번거롭다”며 “행정 처리가 쉬워질수록 개인투자조합은 늘어나고, 투자 시장도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투자 관련 업무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하는 업체는 지향점이 대체로 비슷하다. 2020년까지 국내에선 ‘한국판 카르타’를 꿈꿨던 10여 개의 전자 주주명부관리 서비스가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요 고객은 스타트업이었다. 2012년 미국에서 설립된 카르타는 2019년 3억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기업 반열에 올랐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곳들은 더 큰 성장을 위해 투자사의 수요에도 주목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유동성 확대로 인한 투자사 증가 추세는 이들에게 유리한 시장 조건이었다. 이미 카르타가 성공을 증명한 사업모델이기도 했다. 카르타는 펀드 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내 VC들 역시 일손 대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선 380개의 신규 투자조합이 10조7286억원 규모로 결성됐다. 직전 연도 대비 신규 조합 수는 24개 감소했으나, 금액은 1조2308억원 늘었다. 백오피스 인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백오피스는 운용 지원과 회계처리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펀드 투자 성향과 속사정을 꿰고 있어야 해서 경력자 찾기가 어려웠다”며 “대표들이 큰 하우스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백오피스 인력을 빼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백오피스 규모가 작은 투자사와 신생 운용사를 중심으로 자동화 SW를 찾는 곳이 늘기 시작했다.
펀드 관리 외주화 '심리적 거부감' 관건
우호적인 시장 상황은 올해 본격적으로 달라졌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펀드 결성액은 4조5917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코로나19 발생 첫해였던 2020년과 비교해선 105% 증가했지만 앞으로 하락세는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지난달 자본잠식에 접어든 VC가 7개로 202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스타트업의 어려움이 투자사로 옮겨오고 있다. 이젠 백오피스 자동화 SW를 만드는 스타트업도 더 이상 유동성의 과실을 누리기 어려워졌다.성장세 지속을 위한 숙제는 ‘큰손’ VC를 대상으로 한 고객군 확대가 언급된다. 또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라파트너스, 쿼타랩 등의 서비스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나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작은 규모의 VC들 선호도가 높다”며 “백오피스가 크고 프리 IPO까지 투자하는 대형 투자사는 서비스 사용을 일종의 외주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보안 이슈와 심리적 거부감이 존재하는 상태”라고 귀띔했다. 자동화 SW가 인력 전체를 대체하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사람을 추가로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먼저라는 것이다. 보안상 안전하다는 신뢰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중소형 투자사의 관성도 넘어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5인 규모 VC에 근무하는 한 투자심사역은 “심사역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익숙하지만, 백오피스는 채용할 때부터 장기 근속할 인물을 찾는다”며 “소형 VC의 의사 결정권자는 대부분 대형 하우스 출신으로, 외주화에 돈을 쓰는 대신 1명이라도 제대로 된 백오피스 인력을 키워나가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10인 규모 VC의 또 다른 투자심사역은 “모태펀드 출자 분야 중 규모가 큰 곳일수록 프레젠테이션(PT) 과정에서 펀드 관리 역량을 내세워야 하고, 때론 실사 과정에서 관리팀이 불려 나가는 경우도 있다”며 “몸집 확대를 꿈꾸는 투자사 입장에선 비용을 분산하지 말고 경력직 백오피스 인력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