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못 쓰는 ESG 펀드…세제 혜택 등 정책 지원 목소리

지난 6개월간 ESG 분야 펀드 자금이 유출되는 흐름을 보였다. 상대적인 수익률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과 함께 기존 대형주 펀드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ESG 펀드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는 만큼 수익률을 보정할 세제혜택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경ESG] ESG Now
출처=게티이미지
자본시장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자금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ESG 펀드는 ESG 역량이 뛰어난 기업이나 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펀드다. ESG 펀드시장이 커질수록 기업 입장에선 ESG 요소를 강화하는 유인이 된다. 이러한 ESG 펀드시장이 자금 유출을 겪으면서, ESG 역량 강화를 모색하는 정부나 ESG 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식형 펀드에서 썰물

9월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6개월(3월 1일~9월 1일) 새 ESG 분야에 투자하는 54개 주식형 공모펀드 및 상장지수펀드(ETF)에서 2495억원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펀드 순자산 규모는 15% 줄어들었다.

ESG 주식형 펀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업을 선별해 이러한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다. 펀드에 따라서는 특정 기업에 투자한 뒤 주주총회 등을 통해 ESG 요소를 강화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기업에는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사회활동을 늘리고 지배구조를 개선할 유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상대적 수익률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ESG 주식형 펀드는 지난 6개월간 7.2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플러스(+) 수익률이긴 하지만 올 들어 2차전지, 반도체를 포함해 각종 테마주가 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투자자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올해 2차전지 테마를 시작으로 반도체, 초전도체, 바이오 등으로 자금이 이동하며 순환매 장세가 이어지면서 ESG 관련 투자의 투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ESG 주식펀드가 투자하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분야가 올해 부진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국내 대표적 태양광업체인 한화솔루션이 -18.61%, 풍력업체인 씨에스윈드는 주가가 -21.25% 떨어졌다.

증권업계가 ESG 펀드에 대한 그린워싱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ESG 펀드 대부분은 코스피 대형 기업을 중심으로 담고 있는데, 일반적 대형 펀드와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포트폴리오만 보면 일반적 대형주 펀드와 ESG 펀드의 구분이 힘든 경우가 많다”며 “투자자 입장에서 딱히 ESG 펀드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전하는 수익률 경쟁

ESG 채권형 펀드에서도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20개 ESG 채권형 공모펀드와 ETF에서 같은 기간 5958억원이 순유출됐다. 순자산도 6개월 전에 비해 26.5% 감소했다. ESG 채권형 펀드는 기업들이 탄소중립 등에 투자하기 위해 발행하는 ESG 채권에 투자한다. ESG 채권형 펀드 규모가 커지면 ESG 채권 시장도 커질 수 있는 구조다.

ESG 채권 펀드 역시 수익률 부진이 투자자가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ESG 채권형 펀드는 6개월간 2.52%의 수익을 냈다. ESG 채권형 펀드는 금리 상승 국면에서 각종 채권형 상품은 물론 예적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ESG 채권펀드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채권형 공모펀드와 ETF에 비교해 강점을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다. 올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만기 매칭형 채권 ETF다. 손실 가능성이 0%에 가까운 높은 안정성과 더불어 5% 이상 연 기대수익률을 보여주면서 조 단위의 개인과 기관의 자금이 모이고 있다. 장기 국공채 펀드와 ETF도 금리 상승을 기대한 투자자의 자금을 모으고 있다. ESG 사업에 투자하는 ESG 채권형 펀드가 이 같은 펀드와 비교해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올해 채권형 펀드시장이 이 정도로 호황인 상황에서도 ESG 채권펀드가 외면받았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정책적 지원 목소리도

근본적으로 단순 수익률 경쟁을 하는 한 ESG 펀드가 빠르게 성장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자의 제1원칙은 결국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좋은 투자’라고 해서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특히 ESG 펀드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단순 경쟁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다고 ESG 펀드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증권업계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업들의 ESG로의 변환을 가장 빠르게 촉구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제나 사회적 압력보다 ‘ESG로 투자받을 수 있다’는 유인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익률을 보정할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ESG 펀드에 투자하는 개인이나 기관의 경우 펀드 수익에 대한 세금을 일부 감면해주는 식이다. 특히 ESG 주식형 펀드에 장기로 투자하는 경우 세제 혜택을 파격적으로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기 자금 이동의 유인을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ESG 시장에 꾸준히 자금 공급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ESG 요소가 강한 펀드를 선별해 배당·금융투자소득 비과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SG 채권형 펀드는 이자소득이 주요 수익원인 만큼 저율의 분리과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금 절감 외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에선 하이일드 펀드에 대해 공모주 물량의 5%를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ESG 채권형 펀드 등에 대해서도 이처럼 특정 혜택을 주는 방식을 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SG 시장이 기업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큼 커지려면 현재 성장 속도로는 부족하다”면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성상훈 한국경제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