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를 향한 강렬한 몸짓…'직진녀' 줄리엣이 온다

Cover Story
몬테카를로 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과 달리 '주체적인 여성'으로 재해석
슬로모션 등 활용, 영화 같은 무대 연출
내달 7~18일 서울·대구·강릉서 공연
이탈리아 베로나의 두 명문가이자 앙숙 관계인 몬테규가(家)와 캐퓰렛가. 두 집안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의 장난처럼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지독한 사랑에 빠져 죽음을 맞는 두 연인의 이야기, 전 세계 연인들의 ‘사랑 지침서’와도 같은 ‘로미오와 줄리엣’. 400년도 더 전에 쓰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이 명작엔 사실 말이 필요 없다. 인생에 단 한 번, 단 한순간이라도 그런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다. 그래서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연극과 영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곡가와 안무가에게도 영감을 줬다.

베를리오즈, 차이콥스키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음악을 썼다. 안무가들은 그에 맞춰 발레를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이 가장 많이 쓰인다. 그가 만든 음악은 러시아 안무가 라브로프스키의 대본 및 안무로 완성돼 1938년 초연했다. 이후 케네스 맥밀란(1965년), 유리 그리가로비치(1978년), 루돌프 누레예프(1984년) 등 수많은 안무가가 그의 음악을 재해석해 다양한 안무를 만들었다.

두 연인을 죽음에서 깨운 ‘마요’

세계 정상급 발레단 중 하나로 꼽히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장 크리스토프 마요 예술감독이 안무를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고 내한한다. 공연은 다음달 13~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몬테카를로 발레단 제공
1996년.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요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언의 발레 무대 위로 다시 불러냈다. 셰익스피어와 프로코피예프의 원작을 기반으로 클래식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단숨에 “21세기형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호평을 받았다. 그해 12월 몬테카를로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 하나로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한국에선 국립발레단이 2000년 초연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라이선스 공연으로 여러 차례 선보였다.

마요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뭐가 다를까. 이 작품 속 줄리엣은 원작보다 더 주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지고지순함, 연약하고 여성미 넘치는 모습을 넘어 주도적이고 자아가 강한 여성으로 재창조됐다. 줄리엣은 소년 같은 몸짓을 통해 로미오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또 로미오가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그의 뺨을 때리는 듯한 대담한 표현도 담긴다.원작이나 다른 버전에선 조연에 그친 로렌스 신부가 극을 이끌어가는 것도 마요 버전의 특징이다.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식의 주례를 서고, 두 사람이 몰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가짜 독약을 줄리엣에게 구해주는 인물. 이 작품에서 거의 매 장면 등장하며 과거 회상 장면과 광장 인형극 장면 등을 이끈다.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예언하는 일종의 ‘예언자 역할’도 한다. 줄리엣의 어머니 캐퓰렛 부인은 부성과 모성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밖에 티볼트와 머큐쇼 등 다양한 캐릭터가 짜임새 있게 극을 완성한다.

단 한순간도 눈 감을 수 없는 ‘영화 같은 발레’

모던한 무대 장치와 절제된 조명으로 오로지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마요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특징이다. 장면 연출과 무대, 조명, 의상 등이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흑백의 무대 공간 위에 줄리엣이 황금빛 의상을 입고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이는 장면에선 빠르고 긴박한 음악에 슬로모션 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그런 마요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음달 한국을 찾아온다. 오리지널 발레단이자 세계 정상급 컨템퍼러리 발레단인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장 크리스토프 마요와 함께 내한해 서울(10월 13~15일·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대구(10월 7~8일·수성아트피아 대극장), 강릉(10월 18일·강릉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전설적인 발레 제작자이자 무대미술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결성한 ‘발레 뤼스’가 해산한 뒤 그 뜻을 이어 1932년 결성됐다.

발레 뤼스는 발레를 대중화한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20세기 음악, 패션, 미술 등 다양한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이후 복잡한 분열과 해산의 과정을 거쳤지만 1985년 발레에 남다른 애정이 있던 모나코 공주 카롤린에 의해 왕립발레단으로 새출발했다. 마요는 1993년부터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초빙됐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