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충돌방지법? 그건 몰라…" 지방의회의원 '묻지마 수의계약'

가족 내세워 건설공사·의류용품·폐기물 처리 등 일감 따내
적발돼도 징계까지 하세월…"공직자 윤리 의식 실종 심각"
전국의 광역·기초의회 의원들이 가족까지 합세해 지자체 일감을 수의계약하는 위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묘한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 가고 운 좋게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자정 능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등기부터 폐기물 처리까지 유형도 가지각색
경남 고성군의회 의원의 배우자인 A 법무사는 2020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고성군과 총 206건, 9천825만원의 등기위탁 계약을 수의계약 했다.

고성군은 군의회로부터 A 법무사와 수의계약 체결 제한 대상이라는 공문을 받고도 관련 부서와 공유하지 않고 그대로 수의계약을 해왔다. 경남도는 지난달,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실무 책임자 경징계 등을 고성군에 요구했다.

대구 중구의회 배태숙 의원은 유령회사를 통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중구청과 총 8건(1천680만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구의원으로 당선된 배 의원은 당선 전부터 자기가 운영한 업체를 통해 중구청과 수의계약을 맺어왔다. 이후 의원 신분이 되면서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수의계약을 할 수 없게 되자 유령회사를 만들어 계속 계약을 진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의회는 지난달 7일 열린 제291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배 의원에게 30일 출석정지 결정을 내렸다.

전북 익산시의회 장경호 의원 배우자 B씨는 지난 6월 열린 '제2회 전국어울림 생활체육대축전'에 필요한 단복 3천300만원어치(1벌당 13만1천600원·총 250벌)를 장애인 체육회와 수의계약을 해 논란을 빚었다. 경기 평택에서도 한 시의원의 아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방역업체가 관할 보건소에서 발주한 방역 용역 건을 다른 업체 명의로 수의계약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평택시민재단은 "모 시의원의 아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평택보건소와 송탄보건소가 발주한 방역 용역 3건(1천280만원)을 수의계약을 한 B업체로부터 계약 금액 전부인 1천280만원을 입금받은 내역을 확보했다"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을 감추려는 '꼼수 계약'이 행해진 걸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 관련법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그쳐
지방의원들의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장치들은 마련돼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33조(입찰 및 계약 체결의 제한)상 지방의회의원과 그 의원의 배우자 등이 사업자인 경우 그 지방자치단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해충돌방지법) 역시 제9조(직무관련자와의 거래 신고)와 제12조(수의계약 체결 제한)를 통해 지방의원과 배우자의 수의계약 체결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원과 그 가족들은 막무가내식 수의계약을 이어간다.

경남 의령군의회 김봉남 의원의 배우자가 실소유주로 있는 한 폐기물처리업체는 최근 8년간 의령군이 발주한 관급 공사 등 370여건, 총 35억원대의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지방계약법상 지방의원 배우자 지분이 50%를 넘으면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다.

김 의원의 배우자가 가진 이 회사 지분율은 49%로 단 1% 차이로 제재를 피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시행된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 자신과 배우자가 단독 또는 합산한 지분의 30%만 넘어도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도록 했다.

이 배우자는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이후에도 3억원 상당의 수의계약 26건을 체결했다.
이 같은 구태 반복은 솜방망이 처벌과도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법이 발견돼도 "나는 몰랐다"고 해명하거나 의회에서 제 식구 감싸기를 통해 단순한 사과나 출석 정지 등의 징계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방지법상 법을 위반해 수의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유도 또는 묵인한 공직자는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난 7월 기대서 광주 북구의원은 자기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다른 대표를 내세워 구청과 수의계약을 따낸 사실이 적발돼 최근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은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북구의회는 의혹이 불거진 지 3년 만인 지난 4일에서야 기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애초 공천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 안 된 사람들이 지방 의회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물의를 빚고 징계도 유야무야 되기 쉽다"며 "공직자의 윤리 의식이 중요하지만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이들을 견제할 기관과 동료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해민 김형우 윤관식 이준영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