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유럽은 규제, 미국은 완화…최종목적은 자국 이익

(116) 디지털 경제와 규제 정책
규제는 디지털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규제개혁 가능.
Getty Images Bank
규제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학자들이 정책 설계의 중심에 등장한 1970년대부터다. 주된 수단은 비용편익 분석이었다. 정책의 비용과 효과를 수량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규제를 없애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목을 조르는 과도한 규제의 촉수를 잘라 버리겠다”라는 포부를 밝히면서 법규에 대한 비용 편익 분석을 실시했다.

미국, 규제는 해롭다는 인식 확고

규제를 재검토하는 업무는 규제 기관을 규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레이건은 규제는 해롭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레이건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머레이 웨이든바움은 규제 때문에 기업이 매년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부담을 짊어진다고 추산했다. 이들은 정부가 내린 명령이 개인 스스로 내린 선택보다 개인의 경제 복지를 더 향상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실제 규제의 역효과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다수 있었다. 펠츠먼의 1975년 논문이 대표적이다. 펠츠먼은 안전띠 법규가 보행자를 죽인다고 주장했다. 운전자는 안전띠 덕분에 더 안전하다고 느껴 더 빠르게 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레이건은 ‘정보규제국’을 신설하고 부서마다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법규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했다.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집권한 이후에도 이러한 기조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전 정권에서 정립된 비용편익 분석이 없어지길 원했지만, 백악관이 규제 기관에 검토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비용편익은 생명을 대상으로도 이어졌다. 미국의 환경보호청은 대기질 규제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위해 1990년 생명이 480만 달러 가치가 있음을 산정했다. 문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불거졌다. 환경보호청이 70세 이상 고령층의 생명 값에 37% 할인율을 적용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미국은퇴자협회는 거칠게 항의했고, 부시 행정부는 사과해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생명의 가치가 올라갔다. 2016년 환경보호청은 인간 생명에 1010만 달러 액수를 적용했고. 그 덕분에 새 승용차의 지붕 필수 강도를 2배 올릴 수 있었다.

유럽, 예방을 기준으로 삼아 규제

유럽은 규제를 미국과 다르게 바라봤다. 유럽 역시 비용편익을 규제 분석의 툴로 활용하지만, 그 해석에 ‘예방’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규제 기관이 명확한 피해 증거를 요구하지 않아도 규제를 가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즉 측정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 미국보다 더 큰 비중을 둔 것이다. 2010년 젖병에 비스페놀A 사용을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스페놀A는 투명하고 단단한 플라스틱 제조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물질이지만, 그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하지만 미국의 식품의약국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동물 사료에 포함된 항생물질, 폐기물 소각로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질, 화장품에 쓰이는 성분에 엄격한 제한을 가한다. 오늘날 환경에 관한 대부분의 규제가 유럽연합에서 시작되는 것도 규제를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을 반영한다.

규제 핵심은 ‘완화’ 아닌 ‘목적 달성’

미국과 유럽에서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디지털 시대라는 이유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 집단 모두 비용편익 분석이라는 동일한 툴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비용편익 분석은 선택을 신중하게 내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만, 해석 주체에 따라 동일한 결과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라고 마찬가지다. 시대를 막론하고 핵심은 제도 혹은 규제가 자국에 유리한가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오늘날 우리나라도 규제개혁이 한창이다. 규제개혁이 단지 ‘규제완화’로 해석되는 건 옳지 않다. 규제개혁의 초점은 자국 산업의 성장과 국가 발전이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규제개혁은 때로는 규제 강화이고, 때로는 규제완화다. 미국과 유럽처럼 자국 이해관계에 맞춰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환경도, 디지털 반독점도 같은 사안을 두고 유럽은 규제하고, 미국은 그렇지 않다. 다른 과정을 밟지만, 의도한 결과는 모두 자국의 이익이다. 규제개혁을 ‘완화 건수’가 아닌 ‘목적 달성 여부’로 평가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결국 규제개혁은 전략에 기반을 둔 정책 개선으로 이해할 때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