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배 안전하게 이끈 뒤 '엄지척' 받을 때 가장 기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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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선사 한기철 씨‘해기사(海技士)의 꽃’으로 불리는 도선사(導船士)는 배를 타는 모든 이의 꿈이자 로망이다. 그만큼 도선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3등 항해사부터 선장까지 15년 이상 바다 경험, 승선 경력을 쌓아야 시험 치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응시 자격 요건도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도선사 합격 연령대도 10년 전 50대 중반에서 지금은 40대 중반으로 많이 낮아졌다. 도선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매년 연봉·직업 만족도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직업 ‘도선사’의 세계를 한기철 도선사에게 들어봤다.
항만 드나드는 선박에 승선해
선장과 함께 접안·이안 작업
6000t 이상 선장 3년 경력 때
시험 응시자격 얻어 '좁은문'
국내에는 약 260명 활동 중
작업 잘못하면 최대 수조원 사고
비상사태 임기응변 능력 갖춰야
▷도선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도선사는 항만을 드나드는 ‘강제 도선 대상 선박’에 승선해 접·이안 작업을 시행하는 직업입니다. 항구마다 수심, 암초, 조류 등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인 도선사가 필요한 거죠.”
▷승선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도선할 배에 오르면 선장이 도선사에게 파일럿 카드(pilot card)를 줍니다. 그 카드에는 선박의 제작 연도, 길이, 엔진 마력 등 선박 제원이 자세히 적혀 있어요. 도선사는 이를 확인한 후 선장에게 도선 계획을 설명하고 선장 등과 한 팀이 되어 안전 항해 및 접·이안 작업을 실시합니다.”▷근무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도선구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부산항은 56명이 순번에 따라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데, 주간(오전 6시~오후 6시) 근무를 이틀간 한 뒤 야간(오후 6시~오전 6시) 근무를 하루 하고 다음 날 쉽니다. 대개 16일 근무 후 10일 휴가를 받는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도선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 무엇인지 궁금해요.“6000톤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3년 이상 일하면 도선사 시험 응시자격을 얻게 됩니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선박운용, 항로표지, 법규, 영어)과 면접시험에 합격하면 배정 도선구에서 6개월간 200척 이상의 도선 실습을 받습니다. 최종 시험에 합격하면 도선사 면허가 주어집니다.”
▷선장이 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해양대 등을 졸업하고 처음 배를 타면 3등 항해사(2년)로 시작합니다. 이후 2등 항해사(2~3년), 1등 항해사(5~10년), 선장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도선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채우기까지 평균 15년 정도의 승선 경력이 필요합니다.”▷도선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 과정은 어떤가요?
“시험에 합격한 도선사들은 선배 도선사를 따라다니며 항만의 항로표지, 지형지물, 예선 사용법 등 실무를 도제식으로 배우게 됩니다. 현장에 투입되면 도선사 1년 차는 3만 톤 이하, 2년 차 5만 톤 이하, 3년 차는 7만 톤 이하의 선박을 도선할 수 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도선사는 몇 명인가요?
“국내에는 약 260명의 도선사가 전국 12개 도선구에 배정돼 근무 중입니다. 예전에는 1년에 10여 명 정도 뽑았는데, 최근 선발 인원이 약 20명으로 늘어났어요.”
▷도선사에겐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요?
“도선 작업은 자칫 잘못하면 수천억 원, 수조 원이 넘는 선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늘 안전이 최우선이죠. 따라서 입·출항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 능력이 도선사에게 필요합니다.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죠. 외국인 선장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도 필수입니다.”
▷항해 중인 선박에 오르는 게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몇 년 전 도선할 선박에 오르다 사다리줄이 끊어져 해상으로 추락한 적이 있어요. 보트가 선박에 조금만 더 붙었으면 지금 이 인터뷰도 못할 뻔했습니다. 도선사의 부상·사망 사고는 세계 각국 항만에서 항상 일어납니다. 그래서 배에 오르내릴 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할 텐데요.“저는 해양대를 졸업하고 해군장교를 거쳐 1984년 현대상선을 시작으로 15년간 오대양을 누비다 지금은 도선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도선사에 대한 직업적 만족도는 굉장히 높아요. 선박을 안전하게 접·이안한 뒤 선장으로부터 ‘굿잡(Good Job)’이란 말을 들을 때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