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의료현장 관리자로 떠오른 AI

송영주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의료기기들이 의료혁명의 액셀러레이터로 활약 중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의료기기의 AI 혁신은 주로 수술로봇과 접목된 형태였다. 수술로봇은 최소 침습이라는 기존 수술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역할을 했다. 복부에 1㎝ 안팎의 작은 구멍 몇 개만 뚫고 수술하는 의사에게 3차원(3D) 입체 영상의 수술 시야를 제공했고, 로봇 팔을 통해 수술 부위에 대한 정밀 제어를 가능하게 했다.AI 수술로봇이 의사를 위한 보조역이었다면 최근 AI 의료기기들은 의료현장의 관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AI 기반 의료기기들이 의사보다 때론 더 빨리 위급 상황을 감지해 경고 신호를 보내고, 또 의사 못지않게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AI 저혈압 모니터링 시스템’은 수술 도중 환자의 저혈압 발생을 예측해 치명적인 합병증 발생을 미연에 봉쇄하고 있다. 데이터에 근거한 AI 머신러닝 알고리즘 덕분이다. 환자 몸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기 때문에 저혈압 발생 시점보다 빨리 위험 신호를 보내게 된 것이다.

최근 의정부 을지병원은 ‘AI 심정지 예측 시스템’ 덕분에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뇌동맥류 수술 후 퇴원을 앞뒀던 환자는 AI 시스템에서 갑자기 이상수치가 나와 진단을 했다. 그 결과 신우신염으로 패혈증이 발견돼 조기 치료할 수 있었다. 혈압 맥박 호흡 등 활력징후 변화를 AI 딥러닝 기술을 통해 분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AI 진단 정확도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국내 한 AI 의료기기업체는 최근 미국 영상의학회지에 실린 영국 노팅엄대 발표를 통해 자사 ‘유방촬영술 인공지능 영상분석 솔루션’이 전문의만큼 우수한 진단 능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민감도에선 오히려 AI 솔루션 수치가 더 높았다는 것.

AI 의료기기의 활발한 임상 적용에는 유연한 정부 정책도 큰 몫을 했다. AI 기술 특성상 당장 임상연구 수행이 어려운 경우 보건복지부는 3~5년이라는 한시적 유예기간을 통해 근거 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AI 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만 받으면 ‘비급여’ 형태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혁신의료기술의 건강보험 ‘임시 등재’ 계획도 밝혔다.

AI가 의료현장 관리자로 역할이 확장됐다고 해서 의료 전문가의 진단이나 치료 같은 고유 영역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AI는 여전히 데이터 학습 도구일 뿐이다. 또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자율 수술 AI’가 당장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뇌, 척수 등 현재 의료기술만으로 어려운 수술 영역에서 AI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