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세계 정상들의 모임 대부분은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 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중하게 작성된 초안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G20 정상들이 채택한 공동성명은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신 이번 G20 정상회의는 세 가지 주요한 흐름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 중 하나는 미국에 유리하고, 나머지 둘은 어려운 과제다.
Walter Russell Mead WSJ 칼럼니스트
첫 번째는 인도의 부상이다. 인도는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강대국 중 하나로 주목받으며 미국의 주요 동맹국 역할을 맡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불참한 G20 정상회의장에서 중심을 차지한 나라는 인도였다. 인도는 달 남극에 착륙하며 우주 강국이 된 데 이어 외교무대에서까지 성과를 냈다. 인도의 성장은 미국에는 좋은 일이다.
강국으로 떠오른 인도
두 번째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반미(反美) 연대 강화다. 중·러와 일부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들 국가의 목표 중 하나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 주로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를 규합해 반미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다. 중·러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를 확대해 최종적으로 주요 7개국(G7)과 G20의 위상을 대체하길 원하고 있다.단 브릭스 가운데 인도는 생각이 다르다. 중·러와 달리 인도는 세계 질서의 대전환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밀착하고, 인도는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우스에서 인도와 중국의 대립이 심화할 전망이다.
세 번째는 유럽의 영향력 쇠퇴다. 역시 미국에는 긍정적이지 않은 변화다. 전문가들은 경제 성장세 둔화, 젊은 인구 감소, 군사력 약화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오랫동안 경고해 왔다.최근 세계 곳곳에서 유럽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럽은 대체로 무기력했다. 과거 유럽연합(EU) 가입에 목을 매던 튀르키예는 이제 흥미를 잃은 듯하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도 직접 참석한 유럽 지도자 7명의 영향력은 불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에 비하면 미미했다.
유럽과 신흥국 사이에 낀 美
국제기구 등에서 유럽의 지분이 과도하다는 비판은 그동안 계속 제기돼 왔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있어 유럽의 권한을 줄이고 신흥국으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는 딜레마다.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려면 미국은 유럽이 그동안 누려온 권한을 줄여 신흥국으로 이전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인권과 민주주의 의제에 발을 맞출 수 있는 핵심 지역은 유럽이다. 국제사회에서 유럽의 목소리가 작아질수록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 달성도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다.인도는 부상하고, 중·러는 위협적이고, 유럽은 움츠러들고, 미국은 머뭇거리고 있다. 이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 글은 ‘As India Rises, the G-20 Reveals a Shifting World Order’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