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기로 유명한 직원들인데 어쩌다"…쑥대밭 된 통계청 [관가 포커스]

통계청이 있는 정부대전청사 전경. 정부청사관리본부 제공
“당분간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자중해야 할 분위기입니다.” (통계청 고위 관계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와 통계청이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소득통계를 조작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15일. 통계청 관계자들은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고위 관계자는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감사원 감사 중간 결과에 따르면 통계청은 가계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자가 있는 가구’ 소득에 가중치를 두는 방법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조작했다. 소득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소득5분위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 수치를 고의로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통계청의 통계 조작을 지시했는지 여부는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되지 않았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통계청 직원들의 자발적인 본인 의사에 따라 스스로 조작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면서도 “청와대가 소득통계 조작을 통계청에 주문한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통계청 소득통계 관련 담당부서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통계를 조작했고, 고용통계 관련 담당부서가 비정규직(기간제) 급증 원인을 병행조사 효과로 몰아가도록 통계정보를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소득통계 관련 4명, 고용통계 1명 등 총 5명의 통계청 직원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통계청은 초상집 분위기다. 통계청은 지난 15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가 공개된 지 5시간여 후인 오후 7시에서야 공식 입장문을 냈다. 통계청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통계 작성·공표 등 모든 과정에서 중립성과 투명성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간부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통계청 산하기관 및 다른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현직에 있는 직원도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통계청 직원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 통계청 공무원은 “감사원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통계청 존립이 흔들릴 정도의 게이트”라고 지적했다. 반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공무원들을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다른 통계청 공무원은 “해당 간부들은 통계청에서도 능력이 뛰어나 일 잘하기로 유명한 직원들이었다”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왔는지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통계청 노동조합도 지난 15일 성명서에서 “전 정부의 부당한 압력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통계자료를 작성하고 시키는 대로 집행한 미관말직의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고 지적했다.통계청 안팎에선 이번 감사원 감사를 계기로 무사안일주의를 앞세운 복지부동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반 정책부처들과 달리 통계청을 비롯한 조사기관들의 조직문화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통계청에서 한때 근무 경험이 있는 국장급 간부는 “예전에 비해 나아졌음에도 통계청은 여전히 웬만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통계청 고위 관계자는 “통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표본 재설계나 보정 작업을 하고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다”며 “모든 작업이 통계 조작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섣불리 새로운 시도를 하겠냐”고 안타까워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 입맛에 맞는 통계를 조작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이 100% 잘못한 일”이라면서도 “향후 정권이 바뀔 경우 수사받을 것을 우려해 상당수 공무원들이 중요한 핵심 업무는 서로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