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뉴 스페이스 시대'의 첫발, 결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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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지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어린 시절의 일이다. 과학 잡지에 아폴로 미션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처음 인간이 달에 갔던 그 역사적인 일을 적은 글 옆에는 사람들이 얼싸안고 환호하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오랫동안 그 사진의 모습을 동경해 왔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무엇인가 엄청난 것을 해낸 것”에 대한 동경이다.
과학은 철저하게 협업으로 진행된다. 항공우주공학 분야는 더 그러하다. 우주에 무엇인가 보내기 위해서는 항공우주공학, 기계공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긴밀하게 협업하고 소통하며 움직여야 한다.이 많은 사람을 한데 모아 수조원이 드는 우주 미션을 수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우주 개발을 진행해 온 모든 나라의 우주 미션은 ‘국가 주도’로 진행됐다. 미국, 옛 소련, 유럽, 일본 등 자국의 힘으로 우주 개발을 활발히 진행한 나라들 모두 NASA, LOSCOSMOS, ESA, JAXA와 같은 국가 기구가 우주 개발을 주도했다.
인류의 우주 개발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주의 ‘사업성’을 읽은 기업들이 뛰어들며 우주 개발의 주체가 민간으로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뉴 스페이스 시대’라고 부른다. 2012년 미국에서 학위를 받던 즈음,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들이 기존의 NASA나 공군 혹은 대기업 연구소가 아니라 스타트업이나 신생기업을 고려하던 걸 되돌아보면, 이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한참 전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젊은 공학자들이 의기투합해 세운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고, 한국에서 자생해 온 우주 관련 기업이 해외 수주를 따내고, 대기업이 우주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한국의 우주 개발도 국가 주도로 이뤄졌다. 우주 개발에 드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국가밖에 없었고, 그 돈은 소수의 임무에 집중됐다. 관련 기술이 자생적으로 피어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민간이 우주 개발 영역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시장이 넓어질 것이고, 더 많은 기술이 개발될 것이며, 더 많은 인재가 이 분야에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은 아이들이 우주를 꿈꿀 것이다.
민간이 우주 개발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첫발은 역시 ‘사람’이다. 한국의 우주 개발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공공에는 우주 개발의 산증인이자 역사인 연구자들이 있다. 민간과 공공 사이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함께 우주를 이야기하고, 함께 꿈꾸고 도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주라는 시장에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성공시켰다. 뒤이어 달궤도선인 다누리도 성공했다. 민간이 우주 개발의 장 안에 등장한 지금이 우주 강국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민간과 공공의 연구자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이룰 우리의 우주 개발 미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