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기 침체, 일본 '잃어버린 10년'보다 길어진다"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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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중국 문제, 일본보다 해결하기 어려워"최근 중국을 덮친 경기 침체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버블붕괴 이후 '빚갚기' 집중하며 경기 부진
日 인구 버블붕괴 20년 뒤 줄었는데 中 지난해 감소
中 부채 GDP 95%로 당시 日62%보다 높아…부양책 한계
美·日은 무역분쟁, 美·中은 신냉전…외투 감소 요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많은 경제학자들이 현재 중국의 상황이 1990년대 일본 경기 침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하지만 여러 면에서 중국 문제는 일본보다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1980년대 국내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10년 넘게 장기침체를 겪었다. 일본 중앙은행(BOJ)이 0%대 금리를 유지했지만 가계와 기업은 투자를 늘리기보다 부채를 갚는 데 집중했다. 이를 '대차대조표 불황'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대차대조표 불황이 일본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중국이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신생아 수가 956만명으로 떨어지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버블 붕괴 이후 20년이 지난 2008년 인구가 줄기 시작한 일본보다 인구 감소 여파가 경제에 더 빨리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5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중국 중기 성장률이 4%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인구 고령화를 꼽았다.
문제는 중국이 선진국에 접어들기도 전에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국 1인당 소득은 1만2850달러로 1991년 일본(2만9080달러)보다 낮다. 중국이 성장 동력을 잃고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채 문제'도 중국 침체가 길어질 수 있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총 공공부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95%로 1991년 일본(62%)에 비해 높다. 부채 비율이 높으면 당국이 소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펴고, 그 결과 불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미국과의 관계도 과거 일본보다 중국이 더 나쁘다고 WSJ는 평가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된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사건이 '플라자 합의'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서 반도체를 대량 수입하는 등 심각한 대일 무역 적자를 겪었다. 이를 뒤집기 위해 미국은 달러화를 평가절하했다. 그 결과 일본은 엔고 불황을 겪게 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폈다. 이때 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주식·부동산 거품을 낳았다. 세계 경제 1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가 일본 경기 침체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도 미국과 무역 마찰을 겪었지만 중국이 마주한 '신냉전'만큼은 아니라고 경제학자들은 보고 있다. 미·중 양국은 최근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WSJ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노력으로 올해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가 급감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 성장을 크게 둔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장기 침체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제한적인 경기부양책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샤오친 피 뱅크오브아메리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성장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재정, 통화, 부동산 정책에서 보다 조율된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 상황이 1990년대 일본보다 낫다는 지표도 있다. '부동산 거품'의 지표로 평가되는 GDP 대비 부동산 가치 비율이 대표적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GDP 대비 부동산 가치 비율은 2020년 260%로 정점을 찍은 뒤 소폭 하락했다. 일본의 1990년 GDP 대비 부동산 가치는 560%까지 올랐다.
또 중국은 도시화율이 지난해 65%로 1988년 일본(77%)보다 낮아 생산성과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중국이 자본시장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만큼 일본처럼 급격한 통화가치 상승 여파를 겪을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