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발되는 직장내 괴롭힘 허위신고는 예고된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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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불과 몇 년만에 허위신고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단순히 제도적 과도기의 문제로 보기에는 허위신고의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겪는 고통이 매우 크다. 한 명의 허위신고인이 여러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가 하면, 신고 처리 과정에서 접하는 다른 사람들(조사관, 노무사 등)에 대해서도 악성민원을 넣으며 다수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
허위신고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 중인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통계화된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을만큼 허위신고가 흔한 곳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허위신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첫째,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노동시장의 불안정 속에 시행되었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하면 근로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게 된다. 과거에 비해 일자리 질이 떨어지니 보상심리도 발생한다.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내자는 심리가 발동하면서 신고조차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허위신고에 대한 대응 지침이 없다. 허위신고가 성공하면 보상, 실패해도 아무런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신고의 수단화가 발생하기 쉽다.
둘째, 사업장 스스로 괴롭힘에 대응할 역량을 키우도록 하지 않았다. 괴롭힘의 개념이 무엇인지, 사업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방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이런 이해가 확산되기도 전에 처벌조항부터 도입됐다. 사업장이 괴롭힘에 대응하는 방법보다 처벌을 회피하는 것을 먼저 배우게 된 것이다. 고충처리위원 제도가 있지만, 이들이 받는 교육은 고작 2-3주에 불과하다. 괴롭힘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극히 부족한 시간이다. 인사부서 담당자조차 괴롭힘 사건과 관련하여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모르기도 한다. 허위신고 사건도, 진(眞) 괴롭힘 사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세번째, 우리나라의 제도는 사후구제 중심이다. 예방중심 정책을 통해 전반적인 인식개선을 꾀하기보다는 사후구제를 통한 최소한의 관리를 선택했다. 인식 수준의 개선 없이 신고라는 수단이 쥐어지면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위해 허위신고를 지시하고, 근로자가 보상을 목적으로 직장 내 약자를 신고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신고당하기 전에 먼저 신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몰아내기 위해 후임들이 신고하고, 다양한 형태의 허위신고가 발생하고 있다.위의 세 가지는 허위신고가 문제된 국가들의 공통사항이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추가적인 문제가 더 있었다.
국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괴롭힘의 개념에 대한 기초연구 없이 제정되었고, 그 결과는 모호한 판단 기준으로 이어졌다. 먼저 법령을 시행한 북·서유럽의 국가들은 법령 제정 이전부터 연구자들이 충분한 기초연구로 괴롭힘 현상을 이해하고, 개념과 정의를 정리했다. 그 결과는 법적 정의와 판단기준 수립에 반영됐다.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괴롭힘으로 번역되는 두 개념, harassment와 bullying도 이런 기초연구를 통해 구분되었다. Harassment는 일회성으로도 인정되는만큼 강도높고, 형태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괴롭힘을 의미한다. 폭언, 성희롱, 인종차별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Bullying은 피해자 관점에서 폭넓은 범위의 행위를 아우르지만, 객관성 확보를 위해 지속성·반복성의 기준을 적용한다.
개념의 혼란 속에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포괄적인 행위(bullying)에 적용되지만, 정작 법적 정의와 판단 기준에는 bullying의 핵심 요소(지속성·반복성)가 없고, 시행되는 제도는 harassment 금지 제도와 유사한 기묘한 법이 되었다. 관련법 시행국가 대부분이 지속성·반복성이 있어야 bullying이라고 보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한두번의 모호한 행위를 트집잡아 괴롭힘이라고 신고하는 사람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속성·반복성의 기준은 신고 접수단계에서부터 1차적으로 허위신고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필터링 없이 신고가 무작정 받아들여지고 있다.직장 내 harassment 금지법과 제도를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bullying) 금지법 시행에 활용하는 일도 발생했다. 직장 내 harassment 금지법은 볼리비아, 네팔, 방글라데시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찾아보기 쉬우며 처벌조항을 동반한다. 반면 bullying 금지법은 1993년에 첫 시행한 스웨덴부터 2023년부터 시행 중인 룩셈부르크까지 약 20여개국에서만 확인되며, 처벌조항이 없는 국가가 더 많다. 이런 국가 대신 bullying 금지법이 없고, bullying 피해율이 높으며(최대 34%), 허위신고 문제도 심각한 영국의 사례가 정책 참고자료로 활용되곤 한다. 객관적 기준 없는 법적 정의와 형사처벌조항, 예방보다 사후구제 중심, 바로 harassment 금지법의 특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근로자 보호가 사용자 의무라는 책임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처벌조항을 통해 강제적으로 의무를 부여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왜 괴롭힘 문제가 본인의 책임인지도 모르는데, 잘못하면 처벌받게 되는 ‘억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억울한 사용자의 선택은 최소한 사건을 축소시키는 편법·위법 대응이었다. 진(眞) 괴롭힘 사건에서는 권력자인 가해자를 납득시키는 대신 약한 피해자를 희생시키고, 허위신고 사건에서는 집요하게 신고하는 허위신고인을 피하기 위해 피신고인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심지어 사측이 나서서 허위신고를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사용자의 의식수준을 높이지 않은 채, 칼자루만 쥐어준 결과였다.
이렇듯 직장 내 괴롭힘 허위신고 문제는 예정된 부작용이었다. 허위신고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노동시장 환경 속에서, 허위신고 유발 요인을 다른 나라보다도 많이 품은 채로, 허위신고 예방 수단은 하나도 적용하지 않은 채 관련법과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부작용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개선이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법령과 제도로 해결할 수 없지만 다른 문제들은 가능하다.전문적인 전담인력 양성과 함께 사업장의 자체적 예방·대응역량을 키워야 한다. '석사학위+6.5년'에 걸쳐 괴롭힘 전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벨기에의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다. 또한 사후구제중심에서 예방중심이 돼야 한다. 사업장 차원에서 괴롭힘 발생 이전에 위험요소를 확인하여 개선하고, 연간 예방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전문성 없는 인사부서가 아닌, 전문 전담인력이 그 역할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Harassment와 bullying의 차이를 이해하고, 객관적 판단 기준을 추가하여 현재의 모호한 괴롭힘(bullying) 판단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신고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괴롭힘 성립 기준을 충족하는 신고만 접수하고, 그렇지 못한 신고는 받지 않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신고 접수를 위한 최소 성립기준을 명확한 형태로 마련하면 허위신고를 걸러내는 수단이 된다. 괴롭힘 예방교육에 성립기준을 바탕으로 하는 신고 준비 방법을 추가한다면 피해자의 신고를 돕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