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아무나 쓰나?” “아니, 뭔가 쓴다면 아무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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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휴가 기간에 본 영화 <머더 미스터리>에는 인기 드라마 <프렌즈>의 '레이첼'이 미용사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여전히 국민 여친으로 통한다는 제니퍼 애니스톤이 역할을 맡았다. 극 속 그녀는 경찰 남편과 함께 부자들이 꾸민 사건에 우연히 휘말리는데, 관객을 대신해 초호화판 세계를 만끽하며 돌아다닌다.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최고급 샴페인을 넉넉히 마시고 1년치 소득에 맞먹을 명품 드레스를 맞춰 입는다.
, 바바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2021
이 영화에서 애니스톤은 본업인 미용사로서 손님 머리를 만지는 장면은 1분도 나오지 않는다. 이 '미스 아메리칸 드림'은 영화 <나의 부자 친구들>에서도 "서민적인" 가사도우미로 등장했는데, 역시 백마 탄 너드를 만나 그렇고 그렇게 잘 풀린다.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는 이를테면 그 미용사 씬에만 집중해서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저널리스트이자 중산층임이 분명한 백인 여성인 저자가 각종 최저시급 일에 뛰어들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기록한 이야기보따리다.
내가 이 저자를 알게 된 건 2002년에 첫 출간된 <노동의 배신>을 통해서였는데, 에런라이크는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같은 일을 구해서 그 힘겨운 노동과 부당한 대우를 재치 있고 흥미롭게 풀어냈다.(국내 초판 제목은 <빈곤의 경제>로, 표지를 동전으로 가득 채웠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면서 “백성 하나하나에 손수 음식을 떠먹이는 공주라 상상했다”고 표현한다. 물론 “험한” 일자리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 여운도 크게 남는 책이다.
빈곤층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대중 매체라는 집단적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소위 '주류'와 다른, 가치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부유층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미국처럼 양극화 현상이 극심한 사회에서 계층과 불평등에 대한 정직한 저널리즘을 유지하는 것은 부유층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심화되는 사회 문제는 묻어 버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의 서문 중에서나는 이번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먼 볼펜만 일자로 세웠다가 볼펜 꼭지만 부서져라 눌러댔다. 주제는 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도 정리 되었는데, ‘글쓰기’란 소재에 심정적인 불편함이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쓰기'와 매우 가까운 출판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줄곧 읽기만 해댔지 삼십 대 중반까지 쓰기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았다. 읽어온 이력에 비해 너무 불균형하다. 왜 그랬을까?
한때는 글을 위대한 사람들의 지식을 전달하는 메신저로만 대했고, 뭘 좀 안 뒤로는 책은 반드르르한 자기 포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형식이든 아니든 솔직한 글 앞에서는,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상대가 있는 대화는 허공 속에 사라지지만 글은 남아서 어떻게든 퍼져나간다. 그래서 두렵다. 억눌린 사회일수록 특권층이 아닌 이상 자기 표현에 주저한다. 누가 들어줄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노예”라고 했던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말은 날카롭기만 하다.
그러나 실은 다른 한 쪽은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은 설화(舌禍)의 시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말에서든 글에서든 목소리가 큰 이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군다.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얼마나 후회했던가. 몇 줄의 글과 기록이, '겸손하고자'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따지는 일에 서툴기만 했던 당신을 지켜줄 지 누가 아는가? 에런라이크처럼 유쾌하게 분노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조용히 기록하라. 쓸모가 있으리니."글은 아무나 쓰나?" "그렇다. 그러길 바란다. 쓰는 당신은 '아무나'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대화중에 그간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는 것처럼, 키보드 위 손가락이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잘 풀리면, 나와 나를 닮은 이들까지 더 나은 곳으로. 영향력이 금이 된 시대, 우리는 침묵이 금인 세상을 아쉽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