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심청가' 손진책 연출 "분량 줄였지만 소리의 맛은 그대로"

국립창극단, 국립극장서 9월 26일∼10월 1일 공연
합창으로 창극에 무게감 더해…"판소리가 가진 힘 증폭하는 수단"
"아이고 아버지, 불효 여식 청이는 요만큼도 생각 마옵시고 어서 눈을 떠서 대명천지 다시 보옵소서."
공양미 삼백석을 대가로 인당수에 몸을 던지려는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있는 도화동을 향해 큰절을 올린 뒤 마지막 안부 인사를 올린다. 심청을 지켜보는 선원들은 그를 재촉하면서도 애절한 표정으로 심청을 지켜본다.

'정년이', '베니스의 상인들' 등 최근 젊은 감각의 작품을 연달아 공연했던 국립창극단이 추석을 맞아 정통 창극 '심청가'로 돌아온다.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18일 서울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올해 '베니스의 상인들', '트로이의 여인들' 등 외국 작품만 올리고 있어 추석 연휴에 한국 전통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리의 본질을 만나는 품격 있는 무대를 준비했다"며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 처음 창극을 보는 관객이라도 소리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배우들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집중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창극 '심청가'는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다섯 바탕 현대화' 작업을 거쳐 2018년 초연, 2019년 재연했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손진책과 안숙선 작창은 판소리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5시간이 넘는 '강산제 심청가'의 전체 사설을 2시간 남짓하게 추렸다.

손 연출은 "서양 연극에 우리의 소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자체를 창극으로 제작해 창극 본래의 틀을 만든 작품"이라며 "판소리의 근본 틀은 바꾸지 않고 소리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내용을 감추고 축소하고 생략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좋은 소리는 건들지 않고 강산제 소리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청가를 서구적인 연극처럼 연출했다면 오히려 새롭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젊은 관객도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을 통해 판소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리꾼 홀로 무대에 올라 고수와 호흡을 맞추는 판소리와 달리 창극에서는 소리꾼들이 다인다역을 맡으며, 해설자 역할을 하는 도창도 출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청가'는 이와 함께 일부 장면을 합창으로 표현해 작품의 무게감을 더했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전 부르는 '범피중류' 장면에서 선원들은 중저음의 소리로 심청의 구슬픈 목소리를 부각했고, 노를 젓는 군무를 펼치며 긴장감을 더했다.

손 연출은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소리의 힘을 증폭하는 수단으로 합창을 사용했다"며 "판소리가 가진 파워는 외국에서도 인정할 정도인데, 이를 어떻게 확대할까 생각하다 합창을 넣었다.

원래 혼자 하는 소리도 함께 소리를 내도록 연출해 감정을 증폭했다"고 밝혔다.
도창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로 창극 '정년이', '트로이의 여인들' 등에 출연한 김금미가 맡는다.

김금미는 앞선 공연에서 도창을 맡은 안숙선, 유수정 명창의 이름에 누가 될까 부담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김금미는 "어떻게 하면 참신한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작품에 임하고 있다"며 "2시간 동안 무대에서 퇴장할 수도 없어 '도창이 뭐길래 사람을 죽이냐'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체 극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부드럽고 활기차게 이어갈지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어린 심청 역은 민은경이, 물속에서 용왕을 만난 뒤 다시 태어난 황후 심청은 이소연이 나눠 연기한다.

심청과 눈물로 재회하는 심봉사 역에는 유태평양이 출연한다.

이날 섬세한 맹인 연기를 선보인 유태평양은 "눈이 안 보이는 느낌을 알지 못해 연기가 어렵지만 무엇보다 판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판소리의 본질에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눈이 멀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다. 소리에 집중하면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