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 듣는 '청년 AI교육'…"수준 낮아 배울 게 없어"

일상이 된 AI
(2) 헛도는 청년 AI인재 양성책

수강생 10명 중 4명 '중장년층'
정부, 지원 실적 채우기 위해
교육대상 만 74세까지 늘려
수준 차이에 기초지식 수업만

"시간 낭비" 취소하고 싶어도
내일배움카드 자격 5년 박탈에
수업료도 내야…마지못해 수강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정책이 헛돌고 있다. 정부가 주관하는 청년 대상 AI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강생 중 청년 비중이 60%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수강 대상을 고령층으로 넓힌 결과다. 수강생 간 수준 차이로 수업 내용이 기초적인 지식 전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장년이 혜택 본 청년 일자리정책

18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난해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 실적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에 참여한 5만6512명 중 3만7628명(66.6%)만 청년(만 15~34세)이었다. 2021년 시작된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 사업은 AI, 빅데이터 등에서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문계 등 비전공자의 정보기술(IT) 분야 취업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의 ‘청년 희망사다리 패키지 사업’ 중 하나로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지원 정책이다.

하지만 이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이 지난해 청년에서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 대상자(만 75세 미만)로 확대됐다. 그 결과 중·장년층 수강생이 늘어났다.

정부 관계자는 “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경제 전환이 가속화해 어쩔 수 없이 지원 대상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올해 상황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 위탁 교육을 담당하는 코딩 교육 업체 A사에 따르면 올해 수강생의 22.1%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겉은 AI 심화 교육, 속은 기초 교육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의 심화 과정인 ‘K디지털 트레이닝’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업은 AI, 빅데이터, 반도체 등 첨단 디지털 분야의 핵심 실무 인재를 양성하는 정부 지원책이다.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내년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3.9% 줄었지만 K디지털 트레이닝 예산은 올해 4136억원에서 내년 4732억원으로 늘어났다.이 교육 과정은 대부분 오프라인에서 수강생이 수업을 같이 듣는 방식이다. 일부 수업은 수강생 간 수준 차이가 커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 정도라는 불만이 제기된다. 이 사업의 지원 대상도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 대상자다.

지난해 부산에서 K디지털 트레이닝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 대학생 김정도 씨(26)는 “AI 교육이라고 해서 수업을 신청했는데 같은 반 수강생인 60대 어르신 수준에 맞춰 수업이 이뤄졌다”며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수업 기간 6개월은 굉장히 중요한데 시간만 낭비했다”고 토로했다.

수업 내용이 교육업체가 공지한 것과 다른 사례도 있다. 메타버스 개발자 교육이라고 광고했지만 게임 제작 기술만 알려주는 식이다.이런 경우에도 대부분 수강생은 수업을 도중에 포기하기 힘들다. K디지털 트레이닝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면 국민내일배움카드 관련 페널티 비용 20만~100만원이 발생한다. 또한 다른 K디지털 트레이닝 수강 등 국민내일배움카드 제도 혜택을 전부 받을 수 없게 된다. 국민내일배움카드 제도는 정부가 구직자에게 최대 500만원어치의 직업능력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상당수 대학생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관련 예산은 남아돌아

K디지털 트레이닝 지정 교육업체 관리에 구멍이 드러난 사례도 있다. 교육을 수탁한 코딩 교육업체 코드스테이츠는 무자격 강사를 대거 채용했다가 적발돼 올 상반기 고용부 조사를 받았다.

일정 기간 이상의 강의 경력과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확인 등 고용부에서 요구한 강사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석 국민대 소프트웨어학부 교수는 “코딩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멘토가 훌륭해야 하고 프로젝트 관리 인력도 좋아야 한다”며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강사 역량을 키우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K디지털 트레이닝 사업 자체가 부실하게 설계·운영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해당 사업의 훈련 인원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K디지털 트레이닝 사업에 2만8521명 지원을 목표로 306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실제 훈련 인원은 2만2394명으로 6127명(21.4%) 부족했다.

김주완/이시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