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WTO 흔드는 무역규제 철저히 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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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제조업 지키려 규제장벽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 비중이 높다. 수출과 수입을 더하면 국내총생산의 70% 이상으로, 자유무역과 개방 경제의 수혜를 본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주요국은 자유무역을 증진하기 위해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유무역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보호무역주의에 가로막혀 있었다. 1995년이 돼서야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쌍방국 간, 다자국 간 협정 형태로 관세, 쿼터 등의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며 자유무역이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미국이 모든 산업을 자국으로 회귀하려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WTO 체제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 대응·총력 지원 필요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 이론으로 보면 무역은 자본이나 인력이 절대적으로는 열악해도 서로 간에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에서 특화 생산하고 무역하면 쌍방의 이익이 증진된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내세워 기존 EU가 비교열위여서 동북아시아에 빼앗긴 제조업을 되찾기 위해 탄소가격으로 역전하려고 시도하자 WTO 체제가 더욱 흔들리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도 주도권이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간 친환경 산업을 자국 산업화로 돌리고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미국 내에서 해야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들고나오면서 보호무역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철강의 경우 EU CBAM의 탄소 규제와 미국이 지속 가능한 글로벌 철강 협정(GSSA)으로 중국 철강산업을 잡으려고 하는 틈바구니에서 국내 철강산업은 진퇴양난에 처했다.자유무역이 갖는 의미는 부국이든 빈국이든 서로 무역을 통해 더 나은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는 ‘자유시장’의 경제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만약 이런 자유무역 구조가 붕괴하면 빈곤층은 자국산만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저렴한 물건을 구매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빈곤의 늪으로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건이든 인력이든 효율이 높은 곳으로, 가격을 많이 주는 쪽으로 흐르다 보면 공급이 넘쳐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서 경제적 균형을 달성하게 된다. 탄소가격을 무역규제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EU의 의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과잉 공급 방지를 주장하는 미국의 막무가내 보호무역주의라는 현 상황은 수출·수입으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선 매우 답답한 실정이다.
특히 EU CBAM은 전반적인 탄소배출 규제를 목적으로 하지만 결국 영내 산업보호 정책이고, 미국의 IRA도 친환경 에너지 제조업 자국 산업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WTO 체제를 무시하면서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통해 기후테크 등에 투자하고 미래 경쟁력 증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도 막대한 금융지원과 보조금 정책을 통해 탄소중립 기술에 지원해야만 미래에 조금이나마 경쟁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라 수십조, 수백조원 단위의 투자를 해야만 한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정유, 석유화학, 2차전지 등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산업의 경쟁력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통상적인 대응과 더불어 기술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대응책을 만들고 글로벌 선두기업을 육성하는 다른 주요 선진국처럼 선순환하는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