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차이요? 음악 앞에서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죠"

첼리스트 양성원·피아니스트 유성호 인터뷰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서 듀오 리사이틀
슈베르트·드뷔시·라흐마니노프 소나타 연주

"무대에선 까만 머리, 흰머리 중요하지 않아"
"귀로 보여주는 것 목표…연주자 사라지고 음악만 남길"
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유성호가 2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노장과 신예의 만남은 생각만큼 흔치 않다. 합을 맞추기 쉽지 않은 조합이어서다. 연륜이 패기를 이기면 연주의 힘이 떨어지고, 반대로 젊음이 경험을 압도하면 음향은 거칠어진다. 각자 자기 소리내기에 바쁘면 앙상블은 무너지고,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면 재미없는 앙상블이 된다. 그래서 노장과 신예가 한 무대에 서는 일은 많지 않다.

그 흔치 않은 무대가 오는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다. ‘첼로의 거장’ 양성원(56)과 ‘실력파 피아니스트’ 유성호(27)의 듀오 리사이틀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29세. 아버지와 아들이 음악적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20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이 차 때문에 조화가 깨질 수 있다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무대에선 소리로 말하잖아요. 누구 머리는 까맣고, 누구 머리는 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면 좋은 점도 생깁니다. 다른 세대 음악가들의 음색과 감정을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양성원)

실제 양성원은 유성호 외에도 피아니스트 문지영 박재홍 등 20대 연주자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저는 후배들에게 ‘너만의 개성을 지켜나가라’고 합니다. 서로 음악적 색채가 달라야 합주의 결과물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죠. 이번 무대도 그렇게 할 겁니다. 다른 음색을 잘 어울리게 맞추는 건 선배인 제 몫이죠.”
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유성호가 2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유성호는 양성원과의 연주 소식에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리곤 곧 ‘큰일 났다’고 생각했죠.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요. 밤낮 가리지 않고 연습했습니다. 이런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은 처음입니다.”공연 레퍼토리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드뷔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로 채웠다. “슈베르트 소나타에선 외로우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들려줄 겁니다. 드뷔시 소나타에선 반대예요. 감정보다는 자연 풍경을 소리로 보여줄 겁니다.”(양성원)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는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다시금 창작열을 불태운 결과물이다. 양성원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 당시 느꼈던 강한 긍정의 힘을 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유성호는 “피아노와 첼로 비중이 대등한 작품”이라며 “피아니스트들에겐 협주곡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유성호가 2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양성원은 ‘거장’이란 말을 듣는 나이에도 여전히 연주가 두렵다고 했다.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떨립니다. 연주자가 무대에 선다는 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연습밖에 답은 없죠. 완벽한 연주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병’이라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 말에 유성호는 “무대에 오르면 정말이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두 사람에게 음악가로서의 목표를 묻자 비슷한 답을 들려줬다. “거창한 꿈은 없습니다. 그저 무대에선 양성원이나 유성호란 이름의 연주자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연주한 음악만 남길 바랄 뿐이에요. 연주를 통해 그 옛날 슈베르트가 느끼고 라흐마니노프가 생각했던 것들을 관객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귀로 보여주는 것’ 그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