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버려진 발전소가 새 시대의 예술을 뿜어내는 법

[arte] 변현주의 Why Berlin

뮤직페스티벌 '베를린 아토날' 기간에 열린
나흘 간의 '팝업 전시' Universal Metabolism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Kraftwerk Berlin). 독일어로 발전소란 의미의 크라프트베르크를 공간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곳은 1960년대 초 당시의 동독 지역에 지어진 난방 발전소로 1997년 폐쇄된 이후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2010년 디미트리 헤게만(Dimitri Hegemann)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마가린 공장, 기차역, 맥주 양조장 등 다른 용도로 쓰이던 장소를 미술관으로 재생시킨 곳이 유난히 많은 베를린에서도 그 중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매력을 잘 보이는 공간이다.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의 외부 및 내부 전경.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의 외부 및 내부 전경.
전설적인 테크노 클럽인 트레조어(Tresor)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를린 고유의 힙한 분위기를 지닌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은 라이브 공연장은 물론 문화예술 이벤트 및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4개 층에 걸친 공간의 크기는 8000 m²에 달한다. 2600여명 동시 수용이 가능하다는 이 장소는 전시나 이벤트를 간헐적으로 개최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에 거주하면서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9월 7일부터 17일까지 뮤직 페스티벌 베를린 아토날(Berlin Atonal 2023)이 열리는 기간에 단 4일 동안 미술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였다.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Universal Metabolism》이란 제목의 전시는 25 팀/명이 참여한 그룹전으로 필자에게는 낯선 이름의 아티스트부터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 아뜰리에 에스메스 서울에서도 개인전을 가진 시프리앙 가이야르(Cyprien Gaillard), 한국 출신 이미래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비디오, 회화, 설치 작업 등을 선보이며 ‘보편적 신진대사’로 어떻게 서로 다른 시대와 세계를 예술로 전환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뮤직 페스티벌의 일부이자 확장된 형식으로서 열린 전시였기에 매일 공연과 퍼포펀스가 펼쳐졌고, 특별한 무대 없이 관객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경계를 허물고 문화예술 공간은 어떠해야 한다는 인식의 경계 역시 무너뜨렸다.공간에 들어서면 거대한 공장의 기둥 사이에 설치된 태피스트리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scène VI> (2021)은 기억과 아카이브, 유사(quasi) 기록의 이미지로 구축된 정체성을 탐색하는 브라질 출신 리비아 멜치(Livia Melzi)의 작품으로 그는 1952년 출판된 『미국 대항해 (Grands Voyages: America Tertia Pars)』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유럽을 한번도 떠난 적 없던 저자 테오도르 드 브리(Theodore de Bry)는 이 책에서 원주민을 야만적이고 위한 식인 종족으로 묘사했고, 책 속에 수록된 그림을 재연한 태피스트리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재현한다. 오른편의 너른 공간에서는 미국 작가 브리짓 포크(Bridget Polk)가 돌의 균형을 이뤄 쌓아 올린 설치 작업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었다. 명상과 시간을 이용해 세계에 접근하고 이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는 포크는 중력을 거스르며 돌을 기묘하게 쌓아 설치 작품을 만드는데 마치 자연과 인간의 개입이 만나 실현되는 평형의 세계를 보여주는듯 했다,
《Universal Metabolism》의 전시 전경. Livia Melzi의 작품.
《Universal Metabolism》의 전시 전경.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Bridget Polk.
이 외에도 크라프트베르크 베를린이란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힘, 물리적 현존성으로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례도 목격할 수 있었다. 기계 장치 같은 기술적, 산업적 물질이 지닌 물성과 질감을 비정형의 작업으로 탐색하는 이미래의 작품은 버려진 발전소에 설치되어 공간성의 맥락과 부합하며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Universal Metabolism》의 전시 전경. 이미래의 작품.
이처럼 《Universal Metabolism》는 특정한 역사와 내러티브를 가진 장소가 전달하는 공간성을 활용하며 예술에서의 육체성 및 초(超)육체적 순환이 만드는 교류와 전환, 시대와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전했다. 또한 퍼포머와 관객의 경계,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선입견의 경계를 무너뜨리듯 스펙터클과 공간성으로 방문자를 압도하며 마치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를 소멸시키는듯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스펙터클의 체험을 다시 하고 싶은지 자문하자면, 예술의 경험보다 체험을 주로 주는 공간에 자주 가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대답하고 싶다. 마치 재생 공간의 스펙터클은 관객에게 감동보다 일종의 압도감을 주는 21세기 테마파크 같은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