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도전' 스페인 정부, 카탈루냐계 지지 필요…하원서도 카탈루냐어 인정키로 EU 공식언어 추가시 막대한 행정비용…회원국들 반응도 회의적
유럽연합(EU) 공식 언어에 스페인 자치정부인 카탈루냐의 고유 언어를 추가하는 문제가 때아닌 논쟁 중심에 섰다. 스페인 정부는 공식 언어 채택을 계기로 자국에서 카탈루냐계 지지를 확보해 연임에 도전한다는 구상이지만, 아직 EU 차원에서는 회의적인 기류가 역력한 것으로 보인다.
EU는 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일반이사회 회의에서 의장국 스페인이 요청한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의 EU 공식 언어 추가 여부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EU는 "(공식 언어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달라는 스페인의 요청에 관해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했으며, 지속적으로 논의를 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결과를 전했다. 채택 여부에 관한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는 스페인어와 함께 보조 공용어로 분류된다.
이 언어들은 스페인어와 함께 학교에서 가르치며, 동북쪽의 카탈루냐, 북쪽의 바스크 지방, 서북쪽의 갈리시아에서 각 지역 행정부와 의회에서 사용된다. 현재 카탈루냐어 사용자는 약 900만명, 갈리시아어 사용자는 약 300만명, 바스크어 사용자는 약 75만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바르셀로나가 주도(州都)인 카탈루냐는 1714년 스페인에 병합됐으나 고유한 문화와 역사에 긍지를 느끼는 주민들은 줄곧 스페인 중앙정부에 독립을 요구해왔다.
지난 2017년에는 중앙정부 불허에도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면서 양측 간 갈등이 격화했다.
이에 따라 카탈루냐 자치정부와는 오랜 앙숙 관계인 스페인 중앙정부가 EU 무대에서 카탈루냐를 지원사격하고 나선 것은 복잡한 스페인의 내정 탓이다.
중도 좌파 성향의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을 이끄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 대행은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가 '총리'에서 '총리 대행'으로 직함이 변경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7월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우파 국민당(PP)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가 이달 말 실시되는 총리 선출 투표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고, 총선에서 제2당이 된 사회당의 산체스 총리 대행은 위기를 기회 삼아 연임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산체스 총리 대행의 이런 구상이 실현되려면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 등 분리주의 성향 소수 정당의 지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산체스가 이끄는 중앙정부가 카탈루냐어 등을 EU 공식 언어로 추가하자고 드라이브를 거는 것 역시 그 연장선인 셈이다.
현재 EU 규정에 따라 인정되는 공식 언어는 총 24가지로, EU 모든 법규, 결정 사항 등이 24개국 언어로 발행된다.
그러나 EU 공식 언어를 새로 채택하려면 27개국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번에 3가지 언어나 추가되면 막대한 행정 비용이 뒤따르는 데다 유럽 내에서 사용되는 다른 소수민족 언어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추가로 분출될 수 있다.
이날 EU 회의에서도 핀란드, 스웨덴 등 일부 회원국이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 대행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몇몇 회원국들이 영향 평가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아예 반대한 회원국은 한 곳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세 가지 언어 중 우선 카탈루냐어만이라도 공식 언어로 인정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탈루냐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스페인 현지에서도 팽팽하다.
스페인 하원은 이날부터 회의 진행 시 카탈루냐어와 바스크어, 갈리시아어를 사용하도록 공식 허용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자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우파는 이에 반발했다.
산체스 총리 대행 소속의 사회당 의원들이 갈리시아어로 연설할 때 극우 정당 '복스(Vox)' 소속 의원들은 항의의 뜻으로 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국민당 의원들도 통역기 사용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