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와 해태 설립의 '나비효과'… 김치볶음밥의 탄생[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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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장원철 지음/글항아리
376쪽|1만9800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이렇게 프라이팬, 냄비, 칼, 도마, 젓가락, 그릇, 냉장고 등 주방 물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장원철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어느 날 글로 먹고사는 미래가 슬슬 불안해진 그는 장사에 뛰어들었다. 2012년부터 5년간 서울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 기물을 취급했다. 그릇뿐 아니라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선풍기, 쓰레기통, 신발 등 업소가 필요한 온갖 기물을 다 거래했다. ‘장사꾼 DNA’가 없다는 걸 깨닫고 글쟁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매력적인 책이다. 책 뒤편의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저자는 자료 조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런 깊이 있는 조사가 저자의 글솜씨와 맞물려 독자의 눈앞에 매끄럽게 펼쳐진다. 재미와 정보를 다 잡은 수작이다.
현재 주방용 칼은 일본식과 서양식 칼이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목적과 기능에 있어 중식 칼만큼 탁월한 칼은 없다”고 말한다. 요리사들의 세계에서 정식 일본 요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6~7가지의 일식 칼이 필요하다. 야채용, 어패류용, 횟감, 갯장어와 뱀장어용, 초밥용 등 식재료와 목적에 적합한 칼이 따로 있다. 서양 요리는 이보다 더 복잡해 대략 17개의 칼을 상비해야 한다.
중국 칼은 오로지 한 가지다. 큼지막한 손도끼 모양으로 일반 가정에서도 전문 요릿집에서도 이 칼 하나만 쓴다. 크기가 작으면 손이 작은 여성용, 크면 남성용이다. 잘게 다지기, 얇게 썰기, 채 설기, 돌려 깎기 등이 모두 가능하다. 넓적한 몸채는 썰어놓은 식재료를 한 번에 옮기는 데 유용하다. 한국 음식점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그릇은 멜란민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그릇이다. 이유가 있다. 한식은 반찬이 많다. 하루 종일 서빙하고 설거지하는 사람 입장에선 가벼운 그릇이 최고다. 스테인리스 밥공기와 식기가 잘 쓰이는 것도 가볍기 때문이다.
고급 식당은 가벼운 그릇과 식기를 쓰지 않는다. 책은 맛에 대한 인상에 식기의 무게감이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실험을 했다. 같은 요리인데도 무거운 식기를 쓴 사람들이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
칼과 도마, 젓가락, 냄비 등 주방 물품엔 삶의 풍경이 담겨 있다. 책은 인류가, 그리고 한국이 거쳐온 ‘부엌의 작은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