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죽겠다" LG 임원의 탄식…2년 만에 6조 '잭팟' 반전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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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절벽'에 확 바뀐 LG전자"이러다 죽겠어요. 사람들이 지갑을 안 엽니다."
소비자 지갑 닫자…'가전명가' LG전자 위기감
가전 재고 10조원 육박…"기업 지갑 열자" 합심
B2B 매출비중 16→20% 훌쩍…재고자산 '뚝'
2021년 중순 어느 날. 회의실에 모인 LG전자 임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치솟는 가전제품 재고 지표를 바라본 한 임원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창고에 쌓인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 재고자산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나빠진 경기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결과다.이날 끝장 토론이 이어진 끝에 "기업들 지갑을 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어컨, 세탁기 등을 기업(B2B·기업 간 거래)에 더 팔아 활로를 찾자는 것이다. 2년 만에 이 같은 전략이 결실을 보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에서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홈어플라이언스앤드에어솔루션(H&A) 사업본부의 올 1~8월 누적 매출에서 B2B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로 전해졌다. 2021년 16%, 2022년 19%에서 올해는 사상 처음 20%를 돌파할 전망이다. H&A 사업본부의 B2B 매출은 2021년 4조3000억원에서 2022년 5조6000억원. 올해는 6조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를 파는 LG전자 생활가전은 소비자들이 고객이었다. 하지만 2021년 코로나19 이후 '소비 절벽'이 구체화됐다. 가전업체들은 당시 ‘보복 소비’ 기대로 평소보다 재고 물량을 더 확보했다. 하지만 불확실한 경기에 소비자 씀씀이가 움츠러들었다. 세계적 인플레이션도 영향을 미쳤다. 비싼 가격표를 보고 놀란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는 이른바 ‘스티커 쇼크’가 번졌다.정신이 번쩍 든 LG전자는 B2B 시장에 전력을 쏟았다. B2B 시장은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하지 않고 매년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장으로 꼽혔다. LG전자는 관공서와 빌딩에 시스템에어컨을 납품하거나 아파트에 빌트인(붙박이 설치형) 가전을 공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유럽, 북미 등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 보일러 판매가 줄어들면서 LG전자의 친환경·고효율 냉난방시스템 ‘공기열원 히트펌프(AWHP)’ 매출도 큰 폭 늘었다.
여기에 세탁기에 들어가는 모터와 에어컨 등에 들어가는 컴프레서 등 가전제품 부품 판매 영업도 이어갔다. LG전자의 모터·컴프레서 외부 매출은 최근 3년(2020~2022년) 동안 연평균 20%씩 늘었다. 곳곳에 빨래방이 들어서면서 여기에 납품하는 세탁기 판매가 늘어난 것도 실적에 기여했다.
30조원이 넘는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류재철 LG전자 H&A 사업본부장(사장)은 지난 2일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 2023’에서 "볼륨존(중저가) 시장을 공략해 빌트인 본고장인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B2B 실적이 늘면서 LG전자의 재고자산도 내림세로 돌아섰다. 재고자산은 2020년 말 7조4472억원에서 2021년 말 9조7540억원으로 폭증했다. 하지만 2022년 말 9조3888억원에서 올해 6월 말 8조6036억원으로 감소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