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거미집' 보니 '이게 영화지' 싶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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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 김열 역 배우 송강호'배우들의 배우',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 송강호를 부르는 타이틀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칸 영화제에 8번이나 초청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도 오르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K-영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송강호가 다시 한번 영화 '거미집'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때론 어수룩하고 인간적이지만, 광기를 발휘하며 거침없이 폭주하는 김열 감독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역시 송강호"라는 평이 절로 나온다.
'거미집'은 '검열의 시대'인 1970년대에 활동하던 영화감독 김열(송강호 분)이 다 찍어놓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촬영을 밀어붙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혼돈과 소동을 담은 작품. 올해 제76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송강호가 연기한 김감독은 호평받은 데뷔작조차 스승의 유작이라는 의심과, 이후 작품은 모두 싸구려 치정극이라는 악평에 시달리는 인물. 이틀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나올 거라는 집착으로, 바뀐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들과 검열 당국의 방해, 제작자의 반대 등 온갖 악조건을 딛고 '거미집'의 재촬영을 감행한다.'거미집'은 김 감독이 밀어붙이는 촬영 현장과 이를 통해 완성되는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이 동시에 선보여지면서 전개된다. 이런 새로운 형식에 대해 송강호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형식"이라며 "익숙하지 않은 패턴이라 생소하고 파격적일 수 있지만, 영화만이 가진 에너지와 맛, 이런 것들을 재밌게 봐주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거미집'은 송강호가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밀정'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5번째로 함께한 작품이다. "영화 속 김감독의 광기가 김지운 감독과 비슷하다"고 밝힌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님은 잘 알려진 대로 영화적인 장르의 변주를 통해 새로운 영화를 찍는 분"이라며 "'영화로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하는데, 이번에도 시작 전부터 '어떤 여행 떠날까' 설레는 게 있었다"고 돈독한 신뢰 관계를 보였다.그러면서도 "김지운 감독은 집요함이 있다"면서 "무지하게 고생했다"면서 웃었다.
"극 중 김 감독이 배우들을 휘몰아치면서 몰고 가는데, 제가 '놈놈놈'을 할 때 감독님에게서 그 모습을 봤어요.(웃음) 그런데 산업 자체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땐 촬영장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면, 요즘은 사전에 준비된 콘티와 연기대로 해야 하니까요. 서로 장단점은 있는 거 같긴 해요."주변 동료 배우들이 연출자로도 여럿 도전장을 내고 있지만, 송강호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에게도 '연출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내 길은 아니다"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지도 않았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감독 역할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니 저도 그 흑백 영화 '거미집' 속에 들어가 연기를 하고 싶었다"며 "배우들의 열정적인 광기가 부러웠고, 그 흑백 화면이 너무 멋있었다"고 말했다.김 감독이 "이틀이면 된다"며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재촬영을 요구한 것과 같이 "저 역시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8번이나 재촬영한 작품이 있었다"며 "그런데 결과물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만 나올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다시 찍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송강호는 '영화만 하는 배우'로 알려졌다. 최근 드라마 '삼식이 삼촌' 촬영을 마치긴 했지만, 송강호는 "드라마를 찍고 와보니 영화만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거 같다"고 솔직하게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거미집'을 보니 '이게 영화지'라고 느꼈다"고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팬, 관객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장점이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 '영화의 소중함'을 짚어준 거 같아요. '거미집'을 촬영하며 느낀 에너지도 좋았지만, 영화가 다시 관객과 극장에서 소통되고, 웃고, 감동하고, 울고 하는 그 공간과 메커니즘 자체가 그립고 소중하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영화는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시나리오부터 연기, 연출 모든 것들이 함축돼 있어요. 이를 위해 굉장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 희열이 있죠. 이런 것들이 폭발할 때 '이게 영화다' 싶어요. 다른 콘텐츠들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에겐 영화만이 갖는 에너지와 표현, 희열이 소중한 가치의 산물입니다.""잘생기지 않은 얼굴 때문에 감독들이 좋아한다"고 겸손함을 보이지만, 송강호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에 출연해왔다는 점에서 더 큰 박수를 받고 있다.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의 초기작부터 함께하며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송강호의 이런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뭔가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의 걸음이 고여있지 않고 조금이라도,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드리고 싶어요. 흥행에 실패하고, 소통에 실패할지언정 이런 시도가 없다면 정말 틀에 박힌 영화만 계속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모습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작품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감독님의 비전입니다. 감독님과 소통이 되는지, 고인 물은 아닌지요. 저에게 갖는 기대감에 부담은 되지만, 거기에 짓눌리지 않으려 합니다. 부담감을 덜어내고, 관객들에게 선물이 될만한 것들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