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소리 그만 질러라"…팔 안으로 안 굽는 '김진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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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동시에 혼돈 휩싸인 정기국회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천막 단식 투쟁 등으로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과 동시에 큰 혼란을 겪은 가운데, 여야의 무질서 속에서 중립을 지키며 탁월한 '중재 리더십'을 보인 김진표 국회의장을 놓고 정치권의 호평이 나오고 있다.
중립 잃지 않는 김진표 국회의장 주목
한동훈에 항의하는 野 의원들에 '호통'
이재명 단식장 찾아가 쓴소리하기도
"김진표처럼 하라고 당적 없애는 것"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 대표의 구속 필요성을 설명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장관은 "대규모 비리의 정점은 이재명 의원"이라고 지적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네가 장관이냐", "장관이 검사냐", "여기가 재판이냐" 등 항의했다. 항의를 주도한 의원들은 대표적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 소속으로 파악됐다.약 23분간 이어진 고성 항의 속에서 민주당 출신 김 의장은 의석에 앉아 연신 소리를 지르는 민주당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중재에 나섰다. 김 의장은 "의원 여러분.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안건이다. 국회법에 따라서 법무부 장관이 제안 설명을 하게 돼 있다"며 "지금 중요한 부분이니까 의원님들은 경청하실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설명에도 좀처럼 항의가 잦아들지 않자 김 의장은 "좀 조용히 들어달라. 의석에서 소리 지르는 행위 제발 좀 그만하라"면서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이어 "의원님들과 법무부 장관이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법무부 장관은 피의사실공표나 이런 쪽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요약해서 설명해주시길 바란다"고 재차 당부했다.이어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 사태를 조율한 김 의장은 한 장관에게 발언을 축소할 것을 요청하며 최종 중재했다. 이런 김 의장 의사진행을 두고 일각에서는 호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기인 경기도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을 꼽자면 김 의장의 의사진행이었다. 한 장관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소리친 장면"이라며 "아무리 의장은 당이 없다지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데 최선의 중립을 지키려는 모습이 좀 놀라웠다"고 평가했다.'의회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국회의장으로서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다. 김 의장은 지난 5일 이 대표가 단식 투쟁을 벌이는 국회 본청 앞 천막을 찾았다. 김 의장이 민주당 출신인 만큼, 방문 당시 이 대표를 향한 지지·응원 성격의 방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김 의장은 이 대표와 민주당을 사실상 꾸짖고 자리를 떠났다.
김 의장은 이 대표에게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비판하면서 "벌써 2번이나 민주당의 일방 본회의 통과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했다"며 "(거부권 행사가) 사전에 예고된 게 분명한 사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단독 처리를 계속하는 게 과연 국민들이나 나라를 위해서나 민주당을 위해서 옳은 거냐"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법안을 일방 통과시킨 것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된 간호법과 양곡관리법을 민주당이 재추진할 방침인 데까지 우려를 표한 것이다. 김 의장은 "민주주의라는 게 51대 49로 국회가 구성됐다고 할지라도 51%가 주장하는 10개를 한 번에 다 (처리하지) 못하면 그중에 6개, 7개라도 살리고 나머지 3개, 4개는 양보해서 타협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국민 70~80%가 '그만하면 됐다'고 만들어주는 게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김 의장의 이런 중립 행보는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에겐 '눈엣가시'다. 당시 김 의장의 발언은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송출됐는데, 이 대표 지지자들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은 1초에 1~2개꼴로 김 의장을 비판하는 채팅을 쏟아냈다. "김진표 국짐(국민의힘 비하 용어)이냐", "무슨 낯짝으로 왔냐", "윤석열 폭정을 얘기하라", "김진표 이 인간 진짜 가만두면 안 된다", "친일파냐" 등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이 이어졌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의장의 방식이 정상적인 거고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거다. 그렇게 안 했던 게 문제이지,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본다"며 "국회의장은 당적이 없다. 김 의장처럼 하라고 당적을 못 갖게 하는 것이다. 역대 국회의장 대부분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는 보지만, 안 그랬던 사람이 있으니까 대비효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의장은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대화와 타협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의회민주주의"라며 "국회의장은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중재와 협상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