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급 연령 상향으로 고갈에 대처해야"
입력
수정
다니엘라 실콕 연금정책연구소 정책연구본부장국내에서 국회를 중심으로 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진통을 겪고 있다. 이 개혁 논의는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해 시작됐지만, 목적과 맞지 않게 '더 내고 더 받는 안'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00년이 넘는 연금의 역사를 가진 영국 전문가가 "수급 연령 상향조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내 주목된다.
고갈 상태로도 연금 운영 가능하지만
그러면 GDP 대비 납입액 부담 커져
"시장경제 통한 노후 대비 활성화해야"
영국 연금정책연구소(PPI)의 다니엘라 실콕 정책연구본부장(사진)은 최근 런던에서 기자와 만나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좋은 방법은 수급 연령을 높이는 것"이라며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받는 기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도 이런 방법으로 연금 재정 악화에 대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을 할 때 더 내고 덜 받게 하면 여론이 악화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다. 실제로 영국은 최근 수급 시작 연령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PPI는 영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2001년 탄생한 민간 비영리 연구기관이다.실콕 본부장은 "국민연금은 고령층과 저소득층에게 매우 중요하고, 이 금액을 높여야 노후 빈곤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수급액을 줄이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그는 "수급 시작 연령을 높이면 조기 은퇴한 사람들이나 남은 삶이 길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조기 수급이 가능한 예외적 조건을 만듦으로써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실콕 본부장은 최근 국내에서 화두가 된 국민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의견도 냈다. 유럽에는 기금이 이미 고갈돼 납입자가 낸 돈이 거의 바로 수급자에게 가는 '부과방식(pay as you go)'으로 공적 연금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영국도 국민연금 계정에 보관하는 돈 규모가 2개월 지급분에 불과한 부과방식이다. 그는 이에 대해 "부과방식은 납입금을 올려서 연금 재정 악화에 대처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렇게 되면 고갈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콕 본부장은 "부과방식으로 전환되면 (운용 수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국민소득에서 연금에 납입해야 하는 돈의 규모가 더 커진다"며 "영국은 204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약 7%를 국민연금에 납입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 비중 2.8%보다 훨씬 높다. 실콕 본부장은 "이 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더 오래 직장에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시장경제를 통한 노후 대비를 활성화하고 퇴직연금에 의존하는 사람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집주인이 돼 월세를 받는 것과 연금을 받는 것 중 어떤 게 더 좋은 노후대비 수단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연금이 더 좋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집값은 예측할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은 집주인이 됨으로써 얼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를 잘 알지 못하고 부동산에 투자한다"며 "집은 종종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가치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콕 본부장은 "내집마련을 하면 집세를 낼 필요가 없고 이는 노후 대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집을 사는데 모든 걸 쏟아부으면 은퇴 뒤의 삶이 막막해질 수 있다"고 했다.
런던=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