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 "영어 쓰는 자산운용특구 조성" … 우리도 고민할 과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주 뉴욕경제클럽(ECNY) 연설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자산운용특구를 창설하겠다고 해 주목받고 있다. 1907년 설립된 ECNY는 미국 경제계 리더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조직이다. 이런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자산운용입국’ 방안을 상세하게 설명한 기시다 총리의 의도는 명확하다. 해외 자산운용사를 적극 유치해 2000조엔(약 1경8000조원)에 이르는 가계 금융자산 투자를 촉진하고, 자산운용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일본 자산운용사의 자산은 800조엔으로 지난 3년간 1.5배 늘었지만, 성장 여력은 더 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일본 가계 금융자산이 역대 최대인 2115조엔(6월 기준)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인 1117조엔이 현금·예금이다. 이 돈을 자산운용 시장으로 끌어들여 금융산업의 질적·양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 복안이다. 일본 금융산업의 대외 경쟁력은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자적인 비즈니스 관행과 진입장벽은 해외 금융사들이 일본 진출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우수한 펀드매니저를 영입할 때 일본어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기시다 총리가 특구 내에서 영어만으로 행정 대응을 완결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비즈니스 및 생활 환경을 정비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은 도쿄 베이징 싱가포르 홍콩 등과 함께 지난 20여 년간 아시아 금융시장 허브 경쟁을 펼쳐왔다. 싱가포르가 앞선 배경엔 일찌감치 영어 공용화를 시행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있다. 반면 한국은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집중 육성하고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부산으로 금융 공공기관을 대거 이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앞서 “핀테크 중심지가 될 여의도에서만큼은 영어로 일하고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역설한 바 있지만 논의의 수준은 높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금융 허브 경쟁 차원에서 제한적 선에서라도 ‘영어 공용화’ 공론화에 나서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