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고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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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초저금리 부작용 많아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세계 경제는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1980년대 이후 금리는 꾸준히 하락했고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제로 금리’를 유지해 왔다. 1970년대 말 오일쇼크 이후 선진국들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고 특히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2% 목표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저금리 기간 자산가격 상승은
소득·富의 불균형 심화시켜
고금리는 가계·기업에 부담
철저한 준비 없으면 위험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
상당 기간 제로 금리와 낮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금리와 물가의 동반 상승은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일이다. 인플레이션은 지난 20여 년간 거시경제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연구 주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만난 한 중견 경제관료는 “공직 생활 중에 높은 금리를 겪은 적이 없어 이에 대한 정책 대응 경험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사실 오랜 초저금리는 많은 부작용을 남겼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980년대 초 연 15% 수준에서 2021년 말 거의 0%대로 꾸준히 낮아졌다. 이 기간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과 같은 전통적인 위험자산뿐 아니라 부동산 사모펀드 등 대체자산, 최근에는 암호화폐 투자까지 과감하게 늘려 왔다.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자산 가격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이들 자산 가격은 급속히 하락했다. 저금리 기간의 자산 가격 상승은 소득 불균형뿐 아니라 부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인플레이션은 선진국과 우리나라 모두 3% 전후로 잦아드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금리는 당분간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시카고대 연구진이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대다수 응답자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적어도 한두 번의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해 금리의 고점은 연 5.75~6% 사이가 될 것이며 2024년 말에 가서야 금리 하락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주 Fed는 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한 차례 소폭 추가 인상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국은행 기준 금리는 현재 연 3.5%지만 미국 등 선진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된다면 당분간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도 예전 같은 저금리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반적인 견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생산성, 국가채무 등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기준 금리는 연 2%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금리 상승은 국내 경제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들에 금리 상승은 당연히 부채 상환 규모 증가와 자본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큰 부담이 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상장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현금 유동성 위험, 부도 위험, 재금융 부담은 금리 상승에 따라 증가하지만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국내 상장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겪은 뒤 저금리 기조에서도 보수적으로 자본구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저금리로 인한 후유증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됐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불붙은 건설 붐은 단기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자금을 조달해 추진됐고 급속한 금리 상승은 지난 연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 시장 경색으로 이어졌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가계 부채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과 저금리가 결합되면서 급속히 증가했다. 우리나라 가계는 보유 자산 규모가 큰 가구일수록 부동산자산 비중이 높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결과적으로 부의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주택 소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25~44세가 가구주인 가구는 최근 금리 상승으로 금융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가계 부채의 주를 이루는 부동산담보대출은 변동금리가 대부분이라 금리 상승은 가계의 부채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고 특히 부채 비율이 높은 가구일수록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에 취약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저금리의 시기가 저물고 한국 경제는 예전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에 직면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수준보다 금리가 하락하겠지만 예전과 같은 저금리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