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묘사하기에 적절한 단어는?"…대학 교재에 이런 질문이

대학 교육까지 '체제 선전' 도구로 쓰는 中
시진핑 연설·명언 수십개…서구 문학은 빠져
덩샤오핑 '개혁·개방' 때와 거꾸로 가는 교육
"시진핑 사상으로 영어공부? 흥미 떨어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안게임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량자허(梁家河)에서 청년 노동자로 일하던 시진핑 주석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형용사는?"

중국 당국이 올해 도입한 대학 영어 교재에 포함된 질문이다.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 북서부 량자허 지역에서 하방(下放)운동을 한 이야기가 교재에 포함됐다. '시진핑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당국의 노력이지만 정작 중국 학생들은 "재미없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24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올해 중국 300여 개 대학은 새 영어 교재 '신시대를 위한 대학 영어'로 수업을 시작했다. 교재에는 시 주석의 명언과 연설문 수십 개가 실렸다. 중국 교육부는 2020년 최신 대학 영어 교육지침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해서는 핵심 사회주의 가치를 교과서에 의도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경영학, 물리학, 생물학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발간된 '신시대' 시리즈는 이러한 교과서 개편의 정점이었다. 교재에는 중국 문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세계를 감동시킨 과정 등을 영어 단락으로 번역하는 과제가 실렸다. 미국의 침략에 반대하는 시 주석의 연설문도 포함됐다. 서양 문화에 대한 내용은 대거 빠졌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중국 학생들이 '서구적 태도'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도 교재에 담겼다.

중국 교육은 1970~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덩샤오핑 체제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 흐름에 맞춰 대학들은 서구적인 영어 교육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자유의 여신상, 바비 인형 등의 주제를 다뤘고 일상적인 영어 표현도 많이 담겼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교육은 중국 당국의 입장을 홍보하는 창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교과서 편집장인 시 지안 쓰촨대학교 교수는 지난 4월 "주요 (서방) 출판물 헤드라인은 모두 중국에 관한 것이며 모두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라며 "서양의 이론은 더 이상 중국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난징대학 출판사 한 관계자는 내년 교과서에 시 주석의 지난해 10월 당대회 발언이 포함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허베이성 북부에 사는 루시 왕은 "시진핑 사상을 영어로 공부하니 영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며 "영어를 배우려면 더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닐 토머스 아시아 사회정책연구소 중국 연구원은 "시진핑 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